일곱 살이었을 때 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와 수유리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살았다. 언니가 학교에 가면 나는 혼자 놀이터에 앉아 있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들이 입학 종이를 들고 찾아왔다. 학생수가 부족해서 추가 입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87년생 보다는 늦게 태어나고, 88년생 보다는 일찍 태어났다. 나는 119cm의 작은 키로 작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며칠 전 서른넷 생일을 맞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일은 싫다고 징징댔는데, 이번엔 나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용띠인 줄 알았다. 서른이 넘으니 내가 이 세상을 몇 년째 살고 있는지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도 없고, 내 나이를 묻는 사람들이 딱히 없었다. 언급되는 일이 없으니 자꾸 잊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은 큰 화젯거리가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소소하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이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황당한 말로 들리겠지만 어느 날부터는 내 나이를 잊지 않으려고 한번 씩 서른셋이라는 단어를 적어두고는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직원이 내 나이를 묻길래 문득 정확한 나이를 다시 보고자 검색을 해봤더니 토끼띠로 나왔다. 요즘은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 천리안과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검색 한 번으로 세상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정보과를 다녔던 나는, 컴퓨터 실기 시간에 오픈 마켓에 상품을 주문을 하는 방법과 전자상거래, 개인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법 등을 배웠다. 지금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때 배워둔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전산 시스템은 점점 더 발달되고 발전해가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과 전산을 배우는 것은 일을 하는 동안에 계속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이제는 새로운 마켓들과 여러 전산들의 어설픈 관리자 어드민을 써보며 개발 요청을 하는 것도 일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지고 있는 만큼 살아가는 동안 이런 여러 세대를 거쳐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IMF와 코로나 등 내가 사는 시대에 겪은 이 일들을 누군가가 역사로 남기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미래 세계에 우리의 이야기들이 글과 책으로 남겨지고 다음 세대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며 배움과 지혜를 얻을지 말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여태 용띠인 줄 알고 살았다.
용띠인 게 마음에 들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88년 토끼띠. 정확해 보이지는 않지만 정확해 보인다. 빠른 년생이라는 단어보다 정확해 보인다. 어감도 나쁘지 않다. 나는 8이라는 숫자가 좋아서 휴대폰 번호에도 8이 많이 들어간다. 가끔 잘 못 걸려오는 전화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 자신은 손자 다섯을 둔 78세 노인이지만 자신이 오랜 세월을 거쳐 배운 것들을 독자들이 여전히 자신의 책을 읽고 새롭게 깨달을 수 있도록 고쳐 쓰며 책을 만들어 가겠다는 글에 감명을 받았다. 내가 78세까지 살아서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글은 계속해서 쓰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살며 배워온 것들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더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무언가를 나누려면 그 마음에 걸맞은 성품이 되어야 더 좋은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한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배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