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은 좌절로 들어가고는 했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누군가 내가 모아둔 행복이라는 감정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때가 종종 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라면 싸워서 지키겠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놓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빼앗길 때가 있다. 감정을 빼앗기고 나면 가만히 앉아 꾹 참고, 또 참는다. 참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시간이 지나면 안정되겠지 하지만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깊은 머릿속에, 마음속에 가라앉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무의식 속에서 생각하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되다가 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물에 가라앉았던 흙처럼 휘휘 휘져어져 흙탕물이되어 밖으로 흘러나오고는 했다.
누군가 머리에 물을 부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굵은 식은땀이 흐르거나, 다한증같이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심각한 습진이 생긴 적도 있었다. 피부가 다 벗겨져 밤에 연고를 바르고 조금 나아지면 그 자리에 다시 습진이 생겼다. 물체를 잡으면 종이에 벤 것 같은 통증에 반창고를 둘둘 말고 일을 했다. 머리카락은 매일 한 움큼씩 빠지고, 목에는 알 수 없는 알레르기가 생겨났다.
매일 악몽을 꾸는 탓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직도 불면증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큰 소리가 날 때도 있는데, 나는 어느 날부터 큰 목소리가 트라우마가 됐다. 큰 목소리만 들으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 크게 위아래로 뛰는 것 같이 요동쳤다. 그러다 말을 하면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날은 온몸이 전기가 오른 것 같이 찌릿하고 뻣뻣해지며 피부가 점점 차가워졌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약하게 만들어버렸을까. 나는 그날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주차장에서 한 시간을 머무르다 겨우 집으로 갔다. 방안에 누워 3시간을 더 울었다.
나는 종종 심장박동이 2시간 이상 빠르게 뛰는 것이 멈추지 않으면 청심원을 먹고 일을 한다. 알 수 없는 몸의 반응들로 병원에 가면 항상 원인불명이었다. 나는 항상 괜찮아지려고 노력한다.
깊이 가라앉혀놓은 불순물들이 하나씩 위로 올라와 생각이 되고 또다시 다른 생각을 만들어낼 때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 내가 무언가를 해도 결국 아무 소용없다는 결론을 혼자 짓게 된다. 그 단계가 지나면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그래 내 잘못이지, 내가 못나서지' 라는 생각을 수 없이 하다가 더욱더 깊은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더 이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감정을 느낀다는 건 축복이기도, 불행이기도 한 것 같다. 행복보다는 불행이라는 것에 더 많은 감정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에 지쳐버리곤 한다.
행복을 회복하기는 어려웠는데, 불행을 얻는 건 너무 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행복을 얻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것으로 내가 행복이라 느끼는 만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불행을 얻는 것도 결국엔 모두 내 생각에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밭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사람의 바닷속에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불순물들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 좋겠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와 서로가 다르게 자라온 환경들, 따뜻한 대화보다 무례한 대화들이 더 많이 오가는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아무리 깨끗이 정리 한들 다시 쌓이지 않을 리가 없다. 어떤 상황이 몰아칠 때야 말로 저 깊은 곳에 숨겨둔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누구나 마음에 어둠이 있고, 깊은 곳에 숨겨둔 아픔이 있다. 그곳은 아무리 정리해도 또 다른, 다른 어둠들이 찾아들어 올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어둠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밝은 곳으로 꺼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무서움 앞에 바짝 서서 느껴지는 것들을 그냥 다 받아낸다. 마주해보고, 견뎌보고, 비워내고,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그때만큼 벌벌 떨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겨우 그거 가지고 그렇게 힘들어해.' 힘듦의 무게는 본인이 아니고는 누구도 판단할 수도, 정의 내릴 수도 없다. 우리가 생각과 마음에 담는 것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 다른 것들을 담아내며 살아갈 것이다.
내 안에 쌓인 불순물 같은 어둠들을 다스릴 것이냐, 사로잡힐 것이냐. 행복을 다스릴 것이냐. 놓아버릴 것이냐.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내 아픈 마음까지, 어둠까지 사랑하면서 살아낼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 햇살을 보기 위해, 사랑하는 엄마를 안아주기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씩 더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