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같이 늙어간다는 것

by 서울경별진

사랑하는 사람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몰랐다. 거울을 보면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스며드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울적하다. 하루가 다르게 작아만 지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 시리다. 엄마의 손을 보면 나이가 느껴져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잠들기 전이면 엄마는 항상 내 방에 와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안아달라고 한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어린아이인 것처럼 안아준다. 엄마의 품이 좋다. 이 포근함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매일 엄마를 안아준다.


나는 그대로 인 것 같은데 가끔씩 만나는 조카가 자라나는 것을 보면 내 시간이 멈춘 것 같을 때가 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아빠가 마지막에 자주 했던 말들이 떠올라 쓸쓸하다. 아빠는 암투병중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술을 먹고 울적한 표정으로 집에 오면 '우리 딸 닮은 아기를 보고 가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사에 가끔 오는 거래처 남자 직원분이 있었다.


나랑 같은 나이인데 아이가 세 살쯤 되었다고 했다. 그분의 아버지도 아프셔서 아이를 보여드리려고 일찍 결혼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빠의 그 말은 평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아이가 없어도, 아이가 생겨도 항상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언젠가는 아빠보다 더 늙어서 아빠를 보러갈지도 모른다. 평생 아빠의 흰머리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기에, 만약에 내가 아빠 나이보다 오래 살아있다면 어쩌면 아빠보다 더 주름이 진 모습으로 아빠를 보러 갈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우리는 이 소중한 하루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여전히 고집불통이고, 여전히 빈틈 많은 그대여도 말이다.


예전보다 안정된 생활이 되니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종종든다. 매일 불안감에 떨며 속이 타들어가는 생활만 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금이 평안하면서도 예전에 나는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게 된다. 불안정했던 나의 과거가 그리움이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날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나는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의 그 사람이 당신의 과거를 알면서도 당신을 받아들여 준 거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상대의 힘들었던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런 나를 받아들여 줄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남을 이어보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면 내 삶을 이해해주지 못하거나, 반대로 내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현재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와 맞는 점이 있는지가 내게 더 중요하지.'


서로가 서로의 사랑이라는 것을 같이 느끼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내겐 아직도 영화 속 이야기인 것만 같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직도 두려움과 맞설때면 입을 꾹 다문다.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떨 때는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직도 마음이 나쁘다. 아직도 사랑에 서툴다. 하지만 함께 늙어가고 싶다.


고집부리고, 가끔은 울적하고, 가끔은 소리 내며 웃고, 밤이되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함께 읽고, 주말이면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며. 서로의 눈가 주름을 어루만지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중력 결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