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무중력 결핍자

by 서울경별진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도 그에게 내 생각이 전해지고 공감을 얻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무언가를 나눠가지게 된다는 것. 퇴근 후 좋아하는 조명을 켜고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쌓인 SNS 피드를 훑어보다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을 때, 마음이 은근히 공허해진다.


하루 종일 무언가에 소비만 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전해지고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내가 가장 공허함을 느낄 때인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났다고 해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하루 종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결핍이 수시로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지는. 내게 어떤 결핍이 일어났는지 모르기에 누구도 내 결핍을 채워줄 수 없는 것 아닐까.


나는 밤마다 비워진 내 마음과 생각에 여러 가지를 담아보려 한다. 요즘은 글 쓰는 게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날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지겨웠던 시간들도 이제 끝나버렸다. 유일하게 글 쓰는 소재였던 내 지난 과거들이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랑 글을 쓰고 싶다는 글만 쓸 뿐 사랑은 시작도 못하는 겁쟁이다. 지금은 내가 무중력의 시간에 들어선 것 아닐까 싶다.


하고 싶었던 일도 막히고 막혀서 지체되고, 잘하고 싶은 일들은 여전히 서툴러 실수투성이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은 받아본 지 오래다. 물론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일은 잘해도, 못해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잃기만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칭찬을 받고 성장하는 1-2년 차도 아니고, 나는 한 달만 지나면 9년 차 직장인이 된다.


수많은 에세이와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지겹고 평범한 직장생활은 때려치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들을 보면 도전도 된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글 쓰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서른이 넘어 내게 어떤 재능이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조금 우습다. 그래도 다들 늦지 않은 때에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표현하자면, 이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무중력 상태의 생물같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미디어가 아닌, 영혼의 짝 같은 사람이 주는 원천적인 그 무엇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 오랜 시간 결핍된 채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이 쓰고 싶어 진 이유는 주말 동안 본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모두 사랑과 우정,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관계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 감정을 잃어버리기 전에 쓰고 싶었다.


사랑은 사랑이고 우정은 우정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사랑과 우정이 공존하여 서로의 결핍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부부들이 자주 말하는 정 때문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게 된 것 같다. 20대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30대가 되니 다르게 다가온다.


정보와 볼거리가 많은 요즘 시대에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별한 그에게 얻는 그 무엇은 그가 아니면 얻을 수 없다. 어쩌다 찾아오는 그 공허함도 그이기 때문에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내게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나 자신을 채워주는지도 모른다.


그가 곁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채워지는 것. 우리는 각자가 가진 유일한 매력처럼, 이 세상에 당신이라는 사람이 단 하나인 것처럼. 그 단 하나의 사랑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새로운 사랑이 와도 그의 사랑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색도, 사랑의 모양도 다르기에. 당신만의 사랑. 그의 사랑. 나의 사랑.


사실 생각해보면 짝사랑도 그를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자라난다. 그가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대도 말이다. 그런 그가 내 곁에 있고, 나를 사랑한다고 해준다면 내 마음은 가득 차고도 남을 것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롯이 사랑하는 그이만을 생각한다면. 그의 하나뿐인 사랑의 모양과 색을 간직할 수 있다면.


사랑이지만 우정이고, 우정이지만 사랑인 그런 단단한 관계. 누군가에게는 우정만을, 누군가에게는 사랑만을 얻을 수 있다면 특별한 그에게는 사랑과 우정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낭만적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 특별한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도 나만이 가진 색과 모양의 사랑, 우정을 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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