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언니의 책장

by 서울경별진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언니와 나는 지금도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나는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즐겨 읽는 편이다. 책을 좋아하는 언니에게 아빠는 한쪽 벽이 꽉 차는 커다란 책장을 사주셨다. 방에 비해서는 큰 책장이다. 언니는 그 큰 책장에 책을 다 채웠다. 책장이 꽉 차면 책 앞쪽으로 쌓아서 꽉 채웠다. 언니의 책장엔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


나는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골라 사지만 언니는 여러 가지 장르를 산다.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관련 책을 사서 공부한다. 사실 언니가 필요한 책이나 여러 가지를 구매해오기 때문에 나는 언니의 책장에 가서 서점처럼 책을 고른다. 가끔 서점에 같이 가면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내 취향의 책을 한, 두권 살뿐이다. 이 세상엔 많은 책이 있다. 서점에 가면 내가 죽을 때까지도 다 읽지 못할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읽히지 않고 사라져 버린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만약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존재하고, 존재하다가 떠나갔을까 생각해보면 광대한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하늘에는 셀 수 없는 인생들이 적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글로 쓰지 못한 이야기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 언젠가는 어른들의 이야기들을 인터뷰하며 그분들의 인생을 기록해놓고 싶다. 먼저 살아간 인생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본다. 지금 세대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 말이다.


언니는 잦은 이사로 이삿짐을 줄이기 위해 모아놨던 책들을 반이상 중고로 팔았다. 이제는 중고로 사고, 팔며 필요한 책들만 책장에 맞게 남겨둔다. 책장을 보면 항상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언니 방에 꽉 채워진 책장을 좋아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언니 방의 문을 열어뒀다. 그러면 손님들은 항상 '책이 참 많네요.'라고 했다. 아빠는 그 말을 좋아했다.


책장엔 다양한 세계가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보지 못한 것들도 모두 적혀있다. 나처럼 밖에서 노는 것이 서툰 사람들에게, 경험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꼭 책이 필요하다. 나는 다른 세상에 가보고 싶거나, 위로나 공감이 필요할 때 책을 읽는다.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세세한 감정의 표현들이 한 문장이 되어, 한 구절이 되어, 그리고 페이지가 되어 내 마음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편하다. 말로 전달할 때는 나의 불안정한 감정이 잘못 표현되어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고, 갑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실수를 종종 일으켰고, 꼭 후회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오래 생각하고 여러 가지의 상황을 유추해서 작성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수정이 가능한 글을 내 피난처로 삼은 것이 아닌 가 싶다. 하지만 글에도 역량에 따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는 것 같다.


내가 읽은 책들을 보며 마음에 남은 그 감동적인 구절들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내 글의 한 구절을 선물처럼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언니는 책을 여러 번 읽고 공부하듯이 읽는다. 밑줄을 쳐두거나, 포스트잇을 붙여두거나,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둔다. 나는 언니가 먼저 읽은 책을 읽으며 언니의 메모도 같이 읽는다. 그러면 나와는 다른 구절에서 깨닫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메모들에 놀라기도 하고 그걸 보며 배우기도 한다.


자주 가는 서점 앞 돌판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정말 완벽한 문장 같다. 이것이 사람과 책의 위대함 같다. 사람이 가진 무한한 생각들이 놀랍다는 생각을 할 때가 이럴 때 같다. 수많은 작가들 중에 똑같은 문체와 표현이 없다는 것. 주제는 같을지 몰라도 작가 각자가 가진 표현력이 다른 것을 볼 때 신기한 것 같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풀이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잘 쓰고, 못쓰고의 기준 또한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닐까. 그 글에 감명받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글은 이미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예술의 가치는 시간이 증명해준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모두의 찬사를 받은 고전문학의 위대함 또한 항상 느낀다.


최근에 본 100년 전 고전만 생각해도, 지금은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표현력에 감탄을 한다. 하지만 고흐의 경우에는 당시에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열린 전시회를 통해 그의 그림이 인정을 받은 것 같이 숨겨진 보석 같은 글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책과 글을 좋아할 것 같다. 오래 좋아하는 것들 중에 책과 글도 있다. 생각해보니 벌써 글을 쓴 지 5년이 되었다. 브런치에서는 1년이 되었다. 가끔 예전의 글을 다시 보는데, 미숙하기만 하다. 어떤 문장은 여전히 좋고, 어떤 문장은 별로다.


쓸 때는 잘 맞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읽으니 어색한 문장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금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어떤 한 문장 때문에 그 글들을 다 애정 해버린다. 좋아하면 그렇게 된다. 단점도 보이지만 좋으면 다 좋아진다. 멋진 문장이 아니어도, 화려한 표현이 아니어도. 그래서 그냥 좋아서 계속 쓴다.


아직 우리 가족들은 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언니의 책장 구석에 내 책이 네 권 꽂혀있다. 아직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직은 읽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보여주고 싶다. 치열했던 삶이 빼곡히 적힌 그날들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때쯤 말이다.


언니의 책장에는 가족들을 위한 책도 많다. 아빠, 엄마를 위해 산 책, 나를 위해 산 책.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위해 샀구나.라는 것을.


그리고 언니는 그 책을 읽으며 우리를 어떻게 보살필지 생각하고 공부한다. 문제가 생겨야 찾아보고 사랑하려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나는 언니의 책장이 참 좋다. 언니의 책장은 바다 같고, 우주 같고, 하늘 같고, 아빠 같고, 엄마 같다. 그리고 언니의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나는 오늘도 언니의 책장에서 책을 하나 골랐다. 나는 오늘 까칠한 백수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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