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오포라는 별명

by 서울경별진

요즘 자주 꾸는 꿈이 있다. 일주일 내내 꾼 것 같다.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나의 과거가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내 친구들이 나를 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내가 그들을 떠나게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생각이 들면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나는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기억해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일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이런 태도를 보여서, 또는 말을 해서 그들이 나를 떠났나?라는 생각이 며칠 동안 계속됐다. 그렇게 생각이 지속되었다. 곁에 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곁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 모두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떠나게 만들었다는 생각.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해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 나를 떠난 걸까 내가 떠나게 만든 걸까.


이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일주일 내내 꿈에서 그 생각들이 이어졌다. 나를 스쳐간 친구들과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꿈에서 깨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현재 그 친구들은 나의 존재는 기억도 못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내게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심각해서 떠난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예전에 나는 농담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의를 중시하고 조금은 딱딱한,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장난이 심한 친구들과는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했을 정도였다.


장난의 정도를 이야기하자면 이성친구가 장난으로 나의 뺨을 때린 일, 또는 내가 싫어하는 언어들을 친구라는 이유로 서슴없이 한 일등, 그 언어는 글로 쓰기도 어렵다. 아무튼 지금도 그게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일을 할 때도 융통성이 없다는 등의 말을 줄 곧 듣고는 했다. 그때는 그게 나의 소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조금은 유해지는 일이 필요했다.


나는 점점 굳어 있던 나를 내려놓기 시작한 것 같다. 아니 버릴 수밖에 없었을지도. 그때의 내가 나를 마주 한다면 나라도 경직되어 있었던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든 것 아닐까 싶다.


살아오며 일어난 일들이 심각한 일들 뿐이라, 장난이나 농담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읽고 있는 '생각의 각도'라는 책에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문제를 해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머감각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최근 40대 직장인의 고민으로 90년생들과의 관계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관계를 위해서는 90년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답변도 들었다. 현시대의 요소를 보자면 요즘은 워라벨과 유머가 큰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똑똑해지고, 균형 있고, 삶을 즐기는 재미의 요소를 찾고 있다는 것.


요즘은 회사에서 어린 직원들과의 대화가 재미있다. 대화 안에서 서로 웃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유행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대화가 되고 웃게 된다. 나는 나의 이 심각한 생각들을 유머로 웃어넘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아직도 깊은 고민들이 내면에 쌓여 있어 털어내는 일들 또한 하고 있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들을 끌어안고 끙끙대기보다는 조금은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아빠는 젊었을 때 재미있는 농담을 잘해서 별명이 '오포'라고 했다. 빵빵 터트린다면서. 내게도 살짝 유머감각이 유전돼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문득, 나의 이런 고민과 살아가는 과정들을 기록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의 한 조각, 한 조각들이 글로 남겨지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남기는 것처럼. 나는 글로써 나를 기록한다.


오늘의 즐거움으로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사는 것.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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