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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의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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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Oct 17. 2021

예쁘지 않을 때가 있을 지라도

어느 날부터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음에 들어 샀던 미니 선인장, 사지 않고 돌아왔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사 온 것들, 지인이나 친척이 키우기 힘들다고 해서 가지고 온 스투키 등등 이렇게 하나씩 키우기 시작하니 베란다와 거실에 예쁘게 자리 잡았다. 키우는 동안 물을 잘 못주거나, 날씨나 온도가 맞지 않거나, 벌레를 먹어서 버리게 된 식물들도 꽤 있다. 그래서 가족들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온도기를 사두고, 이름을 적어두고, 영양제도 주면서 매일 확인을 해준다.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식물도 있고, 꽃 없이 매일 같은 모습이지만 새싹을 틔우는 식물도 있다. 키우는 식물들은 바라만 봐도 좋은 것들 중 하나 같다.


동네 길가에 사는 나무들은 봄이면 어린잎을 싹 튀우고, 여름이면 푸릇하게 청년 같은 모습을 하다가 가을이 오면 잘 익은 과일처럼 노랗게 빨갛게 지다가 겨울이 오면 생이 끝난 것처럼 떨어지고, 조금 마른 채로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어린잎을 튀운다. 지금은 노랗게 빨갛게 변하는 시기라 그런지 푸릇한 색들과 함께 섞여 있는 듯한다. 항상 예쁘게만 보였던 자연이 문득, 자연도 항상 예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계절에 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과정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뀔 때는 색도 바래고, 떨어지고, 꽃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때가 되면 가장 예쁜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곧은 나무에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잎들까지 꼭 사람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테도 늘어나고,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 나무의 뿌리가 사람의 마음 같았다. 그리고 1년 내내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무의 본체는 그대로이지만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사람도 항상 그대로이지만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간다. 가끔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매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무들이 나이 많은 친구 같기도 하다. 둘러싸인 나무들을 보면 나를 지켜봐 주는 듯한 기분도 가끔 든다. 나무 같은 사람이 좋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겠지만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고 커다랗고 뿌리 깊은 나무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작은 것들에 마음 졸이며 살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알 수 없는 안도감과 안정감이 파고든다.


식물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주말이면 수목원을 자주 간다. 항상 예쁜 모습을 하며 우리를 반기지만 예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건 계절이 오기 직전의 때이다. 봄에서 여름이 오기 전, 여름에서 가을이 오기 전, 가을에서 겨울이 오기 전, 겨울에서 다시 봄이 오기 전, 그 과정에서는 사람의 손으로도 어쩔 수 없는 때이다. 그 시기에 수목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는 이렇게 쓰인다. '봄이 되면 예쁠 것 같아요. 봄에 다시 갈게요. 여름이 되면 더 예쁠 것 같아요. 가을에 단풍이 들면 예쁠 것 같아요.' 그 시기에는 자연도 예쁘지만, 예쁘지 않은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본래 예쁜 모습이고, 예쁘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본래 예쁘다. 예쁜 모습이고, 멋있다. 하지만 계절이 오지 않은 때에, 계절을 기다리는 때에는 예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예쁘고 멋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지금은 조금 예쁘지 않을 지라도, 미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도 곧 나만의 계절이 오면 다시 활짝 피어날 거라 생각한다. 내 자리에서 내 모습 그대로 뿌리내리고 있으면 누군가는 와서 쉬고, 누군가는 와서 안정감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 예쁘지 않은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기대한다. 가을이 오면 빨갛게 물들어 살랑거릴 나무들을, 겨울이 되면 새하얀 털옷을 입고 반짝일 나무들을. 그대로 있는 것들이 주는 따스한 행복을 기대한다.


그리고 예쁜 날이나, 예쁘지 않은 날에도 내 본래의 예쁨을 보러 와 주고 알아주는, 내 멋짐을 보아주는 누군가를 향해 가장 예쁜 모습으로 활짝 웃어 보일 날도 오기를 한껏 기대해본다.


당신은 본래 예쁘다. 예쁘지 않을 때가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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