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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Oct 31. 2021

그러나 위로가 넘쳤던

몇 년 전만 해도 많이 했던 생각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였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릴 때는 특별해지고 싶었는데, 이제는 평범해지고 싶다니.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평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평범의 기준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생각했던 어떤 기준에 도달해서 옆을 보면 앞에 있는 더 나은 삶을 바라보게 되고, 지금의 내 환경에 대해 또다시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는 것은 진취적이기도 하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불평과 삶에 대한 불만, 비교의식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이의 매일 행복해 보이는 모습과 멋진 곳, 고급 음식 등을 먹는 사진들을 보며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나도 모르게 오해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보이던 어느 날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저도 사람인데,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어쩌다 행복할 때 올리는 사진들입니다.' 누군가가 속상한 댓글을 달았나 싶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항상 밝고 잘 웃던 직원이 있었다. 언젠가 대화중에 한 직원이 '너는 항상 행복해 보여.'라는 말을 하자 다른 직원이 '네가 저 직원이 행복한 줄 어떻게 알아. 평소에 밝은 사람이 마음은 어두운 경우가 많아.' 그러자 항상 밝아 보였던 직원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 오해를 하며 사는 걸까. 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보이는 것들 투성이다. 어쩌면 보이는 것들에 의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항상 성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에 대해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며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을 올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배웠던 기본적인 것들에 이런 것들이 있다. 숨을 쉬게 해주는 공기, 사랑, 생각, 마음, 말 등등. 이것들은 시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구의 자전처럼 움직인다.


일을 할 때 격려의 말을 들으면 동기부여가 되어 일을 더 집중할 때가 있는데, 반대로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사기가 저하되어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말에 의해 정신적인 지지대가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살아있는 하나의 지구 같기도 하다. 많은 것들을 품고 있고, 세밀하고, 다양하고, 신비롭다. 인간만큼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과 감정이 있다는 것이.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는 가끔 중요한 것을 감추기 위해 보이는 것들에 열심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24시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완벽히 진실한 사람도 없고, 완벽히 거짓된 사람도 없다. 다른 이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때에 따라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한다. 가끔 심리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자주 보인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세요.' 가끔은 나 자신을 내가 모를 때가 많다. 새로운 상황이 생기면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라고 답할 것 같다. 계획적이고 명확한 것들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어쩐지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고, 왠지 모르게 계속 새로운 일들이 닥쳐온다.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갑작스럽게 내 앞에 다가오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이제는 '이번에는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빠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속은 아팠다. 아빠는 그때마다 억울하다며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아빠의 속을 볼 수 없으니 아프다고 하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고 싶어 하지만 아픈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을 아빠를 보며 알았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아픈 것을 알아주길 바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빠는 그랬다.


어느 날은 힘든 일이 다가왔을 때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럴 땐 눈에 보이는 동정이나 위로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이지 않는 그것을 전해받고 싶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아프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씨앗을 심어주는 것과 같다. 보이지 않는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따뜻한 마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이 꽉 차있는 말 한마디가 마음으로 전해진다면 어떤 이에게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하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깨달은 나라는 사람은 위로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들었던 말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날 얇고 낡은 점퍼를 입고 다니던 내게 두툼한 패딩 점퍼를 주며 '올해 겨울은 엄청 춥대.'하고 건네준 말과 야근후 고단한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을  늦은 시간에 잠도  자고 나를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주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오늘도 애썼다.'라며 건네준 말이었다. 사랑과 진심이 담겼던  말들은 잊히지도 않고 항상 마음에 간직되어 있다. 마치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 같다. 나는  단어들을 선물 받은 것처럼 소중하게 고이 간직한다. 그때를 생각하며  말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혼란했던 내 삶에 위로가 넘쳤던 이유는 바로 이런, 나를 살고 싶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이었다. 나를 살게 하고, 숨 쉬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주는 소중함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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