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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Nov 21. 2021

엄마의 삶을 책으로 내야겠다

회사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근처 서점에 들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책은 언니가 자주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두기에 책을 살 일이 많지 않았다. 팬데믹 시대로 들어와서는 독자들이 오디오 북이나 e북을 많이 이용하게 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아직 종이책이 좋다. 책을 좋아하기에 책을 고를 때도 취향이 있다. 표지 질감, 표지 색상, 종이 재질, 띄어쓰기, 문단, 목차, 프롤로그, 에필로그, 그리고 제일 중요한 책의 이름과 문체.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의 확신을 주는 문장. 책 하나를 고를 때도 이런저런 나름의 취향이 맞아야 겨우 한 권을 산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취향을 가지고 책 제목을 하나하나 읽다 보니 300권 넘게 읽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책은 꺼내서 꼼꼼하게 살펴본다. 요즘은 책 이름이 다 부드럽기도 하고, 에세이 책은 감성적이라서 책을 모아두면 마치 글을 읽는 듯했다. 제목을 쭉 나열하며 읽었더니 책 한 권 읽은 기분이 들었다.


내 취향의 제목을 발견해서 읽으면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가들이 꽤 많았다. 마치 내가 쓴 글 같이 비슷한 문장들도 많았다. 하지만 글이란 것이 신기하게도 비슷하지만 작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가 있기에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요즘 작가들의 책을 보니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대형 서점에 가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와 글의 무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 갔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광대한 책장 속에 나만의 문체가 담긴 작은 세계가 꽂힐 수 있을까. 누군가 손을 뻗어 내 책을 집어 들어줄까.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쪼개어 나의 세계를 집으로 데려가 줄 독자가 있을까. 소리 없는 경쟁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역시나 잠깐 스치는 듯한 아쉬운 글이 아닌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 여러 번 읽어도 좋은, 그리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을 써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게 만드는 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요즘 같이 모바일로 구매하고 읽는 것이 쉬워진 세상에 종이 책 한 권을 소유하게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책 한 권도 많은 고민을 하며 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중하게 구매한 책 한 권이 다 읽히지도 못하고 방구석에, 책장에 오래 꽂혀 있다가 중고 서점으로 팔리고 여기저기 온 세상을 돌다가 폐기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쓸쓸해졌다. 물론 내가 못가 본 곳까지 가게 될 책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감을 주게 될지도, 또는 실망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책의 내용처럼 말이다. 나는 그 책을 무척 좋아한다. 그 책은 한 번씩 다시 읽고 싶어서 꺼내 읽고는 한다. 여러 번 읽어도 좋다. 작가라면 누구나 누군가는 내 글의 한 줄이라도 기억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이름과 내용을 계속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는 그런 작은 소원이 생겨나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 문맥에 맞게 완벽하게 들어갔을 때 같다. 어쩌면 마음에 드는 그 한 구절을 위해서 장황한 문장들을 늘어놓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성된 글들은 다시 읽어도 좋다. 그 한 문장으로 인해 다른 문장들이 완벽해졌고, 다른 문장들로 인해 그 한 문장이 완벽해졌기 때문이다. 작품에 항상 주인공이 있는 것처럼 문장에도 주인공이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주인공 같은 한 문장이 있다. 음악에도 여러 가지 구성과 요소들이 들어가서 완벽한 한 곡이 탄생되듯이, 글도 마찬가지 같다. 여러 단어들과 문장. 스토리, 문체 등등의 많은 것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글이 되는 것이다. 생각나는 단어들을 조화롭게 나열하는 일들이 주는 즐거움이 좋다. 가끔은 글은 쓰고 싶은데 주제가 떠오르지 않거나, 소재가 없을 때는 괜스레 초조하거나 조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단어가 내게 주어지면 곧 생각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한 편의 글이 된다.


이런 내 세계를 누군가가 읽어주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둘러보게 된다면,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생각이 나서 다시 읽고 싶어 지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된다면.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니 벌써부터 설레었다.


나는 어쩌면 내 글이 좋아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한 문장으로 인해 전체의 글이 소중해진다. 그렇게 완성된 글에 이름을 붙여주고 자주 읽어주러 간다. 음악이라는 것이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하듯, 글이라는 것도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내 글을 하나씩 다시 읽는다. 내가 처음 출간한 책은 10번 넘게 읽었다. 서툴지만 그때의 내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좋다. 지금은 그렇게 쓰지 못한다. 흘러간 책의 시간만큼 내 시간도 많이 흘러버렸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생각도 환경도 달라졌다.


책은 그 당시 작가가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담기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이 작가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상황에 있구나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을 숨기는 비밀스러운 작가도 있을 수 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작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 작가나 웹툰 작가, 소설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상상력과 스토리,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대한 이야기와 대사까지 장편으로 서술하는 것이 놀랍다. 나는 절대 소설가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단순하게 나만의 문체로 생각들을 풀어내는 것이 좋다.


나는 자주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 듣기로 듣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야기가 너무 짧다.'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사의 내용이 너무 짧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질릴 때까지 반복하며 들을 때가 있다. 생각을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3분이라는 음악의 시간은 찰나를 담은 필름 같다.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주말에도 글 쓰는 것을 놓지 못하는 질척이 회사원이 며칠 전 다녀온 서점을 계기로 제대로 된 글을 써보기로 한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내 글 쓰는 인생에 목표가 하나 생긴 것이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전문학 같이 오래오래 읽힐, 소장하고 싶어지는 깊이 있는 책을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삶을 책으로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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