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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Nov 28. 2021

뛰어나지 않아도 아름답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머리가 좋아서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자격증을 바로 취득하는 친구. 그때는 음악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음악가들이 될 것만 같았다. 축구를 하던 친구들은 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될 것 같았다. 어릴 때는 꿈이 있는 친구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다 특별해 보였다. 초등학교 때 축구부였던 친구들이 있었다. 몇 년 전에 그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검색창에 기억나는 이름을 몇 명 쳐보니, 한 친구가 정말 축구선수가 되어있었다. 신기했다. 그 많던 친구들 중에 단 한 명만이 축구선수가 되어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나도 무언가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숨어있던 글 쓰는 일을 서른에서야 찾았다. 조금 더 어릴 때 찾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땐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 못했을 것 같다.


우리가 천재로 알고 있는 레오나르노 다빈치가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른여덟 즈음에 고전 원전 책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가 서른여덟에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미 그림에 대해 어떤 천재적인 경지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람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서른여덟이면 지금 나이로 70세 정도라고 한다. 그가 라틴어를 공부할 때 10대들과 같이 공부를 했는데 그는 그림과 예술적인 일들을 하면서도 라틴어 공부를 쉬지 않고 했고, 결국 원전을 읽는 경지에 다 달았다고 한다. 체감 70세의 나이에 10대들과 라틴어 공부를 했다니. 어쩌면 그 당시가 편견이나 제한이 더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나 맡으면 수개월 동안 그리게 되는데, 작업이 끝나면 책을 읽기 위해 책방에서 2-3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왜 철학과 고전문학에 심취했냐면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자신보다 앞서간 천재적인 발상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발명품들은 알고 보면 철학자들의 생각지도 못한 발상들. 감정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천재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면 그들과 같은 뇌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천재라고 생각했던 다빈치 역시 천재적인 영감을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원서를 읽기 위해 라틴어까지 공부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다빈치는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꼭 하게 될 거야. 너는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매일 말하면 뇌세포가 활성화되면서 뇌 기능이 향상된다고 한다. 다빈치도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하니, 스스로를 위한 다독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스스로가 듣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올바른 경쟁은 자신과의 싸움과 자신이 쌓아온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가 싶다. 경쟁이 아닌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하지만 한참 혈기왕성했던 20대 때는 바르지 못한 시기 질투가 어쩔 수 없이 생겼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시험 성적으로 친구들과 경쟁을 하게 되니 말이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내 삶에 안주하며 허황된 특별함을 꿈꾸는 무지함을 종종 겪었던 것 같다. 그런 시기가 한 번도 없이 건강한 마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종종 잘 못 튕겨나갈 때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30대가 되자 그런 못된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평온하고, 안정되고, 잔잔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문득,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있지는 않지만, 가족들과 같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조차 무언가가 되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이 되어있는 것 같다. 내 자리, 내 위치, 내 역할, 가정에서 회사에서의 내가 해야 할 것들이 있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내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나 된 것 같은 그 기분 말이다.


내가 무언가가 되지 않았던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그들을 위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떻게 더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가 뛰어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그저 괜찮다. 그냥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좋고, 고맙다. 엄마의 웃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아이가 존재만으로 사랑스럽듯이, 이제 걸음마를 배운 아이를 보는 것 만으로 행복하듯이.


하지만 이러다가  언젠가 다빈치처럼 어떤 공부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안에 '언젠가는..'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항상 잠재되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되지 않은 것 같은  과정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중에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예측해볼  있을  같다.


그러나 아직은 들뜨지 않아도 되고, 뛰어나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뛰어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는 것도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빈틈 있고 실수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뛰어나지 않기에 아름다운 이유는 순수함을 잃지 않음을 대변한다. 누군가를 위해 뛰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뛰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 행복하게 홀로서기를 하는 그 순수함을 간직하는 것.


그러므로 뛰어나지 않아도 아름답다. 뛰어나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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