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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의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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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Apr 16. 2022

너의 봄

추운 게 싫었다. 그래서 겨울이 항상 길다고만 느껴졌다. 3월 초였던 것 같다. 매일 지나는 도로 근처 산 아래로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커다란 얼음산이 생겼다. 그곳은 해가 잘 들지 않고, 나무가 우거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늘 아래의 서늘함이 얼음산을 만들어 낸 것이다.


주변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개나리가 필 준비를 하는데 그늘 아래는 여전히 냉기가 흐르고 옅은 찬바람에 금세 꽁꽁 얼어버렸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오는데도 여전히 그곳의 얼음은 녹지 않고, 이내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나는 그 얼음이 언제쯤 녹을까 생각하며 종종 지나는 길에 바라보고는 했다.


얼음은 한동안을 꽁꽁 얼어있더니 '따뜻하다'라고 느낄 정도의 온도가 되자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도, 바람도, 따스해질 때가 되어서야 물방울들은 다시 자신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홀로 추운 겨울을 맞이 하는 때가 가끔 온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마침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은 그런 시간 말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는 가녀린 그늘과 어설픈 찬바람은 이내 마음을 겹겹이 쓸쓸하게 해 더 꽁꽁 얼어버린다. 얼음이 더 강하게 굳을 때는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렇게 얼어붙고 나면 아무리 힘을 주어도 깨지지 않는다. 그런 때는 따스한 온기로는 부족하다. 얼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린 얼음은 강렬한 햇살과 뜨거운 온도만이 녹일 수가 있다. 그 뜨거움은 내 곁에 있어주는 내 사람들일 수도 있고, 급변해버린 주변 환경일 수도 있고, 변화되는 내 생각일 수도 있다.


누구나 햇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는 것들이 있다. 내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을 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를 햇살같이 따스하게 녹여주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이 녹으면 다시 흐르고 싶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고, 다시 갈 길을 찾아 나아간다.


하지만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의 대부분일 테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적은 확률이겠지만 크고 작은 모든 것에 만족감과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야 말로 가득 차있는 새콤달콤한 과일 상자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얼어붙은 마음과 새콤달콤한 과일 같은 마음.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순간의 감정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똑같은 순간에 내가 불편함을 선택하면 내 온몸이 불편함의 기운을 연신 뿜어댔고, 괜찮아를 선택하면 뭐든지 다 괜찮아졌다. 마음은 속상할 수도 있을 상황이라고 해도 순간의 감정 선택으로 인하여 그 감정을 내 안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지에 따라 나의 우울과 기쁨이 정해졌다.


그래서 나는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 감정을 구분하여 선택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은 스스로가 사랑받은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게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내가 잊지 않는 것이다.


사실 자연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자연을 보면 인간의 삶이 그려진다. 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우리도 알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을. 계절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나의 계절에 겨울이 왔다고 느껴질 때면 당연하게 봄을 기다려 본다.


'너는 지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구나. 하지만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햇살은 비추고 있고, 너를 위해 태어난 누군가가 너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그 가녀린 그늘에서 한걸음 나와서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은 은은한 겨울을 잘 보내고, 다가오는 너의 봄으로 마음껏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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