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별의 유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경별진 May 22. 2022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글을 썼다.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글을 썼다. 어느 날은 화가 나서, 어느 날은 슬퍼서, 또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어서였다. 행복한 날 쓴 글을 별로 없다. 행복하면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 더욱이 글감이라고는 하나도 얻을 수가 없다. 그저 그 행복의 기운을 어느 곳에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은 내 영의 게으름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또다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행복이란 그토록 짧고, 순간적이다. 행복하고, 밝은 날은 글이 잘 안 써진다. 행복한 건 아직도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좋아서 그대로 있고 싶은 것일까.


당분간은 엄마의 연재 글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하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잡아끌며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장에 꽂혀서, 아니 어쩌면 이 문장에 용기를 얻어서 나를 열심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가끔 어떤 한 마디에 홀려서 인생의 기로를 정하고는 한다. 크게는 신념이 생길 수도. 더 크게는 모토를 삼을 수도. 나는 그렇게 거창한 것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내게는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어릴 때 생활기록부에 쓰인 나는 '명랑한 어린이'였다. 청소년기에는 그렇게 밝지도,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그렇게 평범했던 나의 특이점으로는 스스로를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다.


이십 대 중반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둡고, 수줍고, 과묵했다. 조금은 폐쇄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글은 보여주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2주 전에 내 책이 나왔다. 그 책은 아빠와 나의 이야기였지만 아빠는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떠났다.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꾹꾹 눌러쓰는, 꾹꾹 눌러 담음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나는 안다.


아무튼 나는 진정성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한 발을 내디뎠다. 내 삶을 보여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보여주기 식도 아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그뿐인 것 같다. 내 흔적을 남기고 싶은 지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지도.


얼마 전부터 내가 밝아졌다. 다시 예전처럼 명랑한, 발랄한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 같다. 긴장하며 살았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무거웠던 짐들이 점점 내게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 편히 지낸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서운 밤이 오면 이불속에서 기도를 했다. 두 손을 꼭 잡고. 그리고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새벽을 넘어가야 나도 잠이 들었다. 아빠가 잠들지 않은 밤은 무서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무서웠던 밤을 보낼 때 나를 지켜준 건 신의 존재였다.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글을 썼다. 작가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 같다. 낮보다는 밤에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기억력도 좋아진다.


며칠 전 새벽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었다.


'달과 함께 와서 달과 함께 떠날 거야.' 나는 밤을 좋아하기도 하고, 밤하늘에 달과 별을 좋아하기 때문에 썩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에 드는 글은 낮에 읽어도, 밤에 읽어도 다 좋은 글인 것 같다. 24시간 내내 읽어도 좋은 문장. 좋은 감성. 좋은 언어.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밤에 글을 쓰고 낮에 퇴고를 한다. 나는 여전히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


가끔은 내 글을 하루 종일 읽을 때도 있다. 글은 곧 나다. 나를 내가 좋아하는 언어로 쓰고, 내가 읽는다. 나는 이런 감성이 좋다.


내 자신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어로 나를 적어냈을 때다. 그 한 문장을 위해서 다른 문장들도 같이 태어난다. 없는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태어나게 하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어떤 타이틀이 있다. 무명작가. 무명작가라는 말이 내게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자존감이 낮아서도 아니고, 열등감도 아니다. 나는 이런 초라하고 가난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이 간다.


무명작가이면서 무명작가라는 말을 좋아한다. 평생을 무명작가라 불려도 좋다. 평생 글을 쓸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무엇을 위해 진실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삶을 보여주기로 하였는가. 이것은 내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글 쓰는 것을 쉴 수가 없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내게 아직 유효한 동안에는 나는 이유 없이, 이유 없는 글을 쓸 것 같다. 하지만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글을 쓸 것이다.


어쩌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집념의 글들이 새롭게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