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보다는 긴 여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 안식한다는 말보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는 말이 더 좋은 것 같다.
집에서 쉬는 건 몸이 더 힘들다며 일이 없는 날에도 일당일을 다니던 아빠가, 그래서 제대로 된 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는 아빠가 하늘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가장이라는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희생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는 자리인 것을 아빠가 떠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사업실패로 아빠가 진 빚을 갚아야 했던 나는 오랜 시간 아빠를 미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용서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을 가슴앓이 하며 보내야 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평안했다면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시간을 보냈을거라는.
우리는 아빠 없이 처음으로 집을 구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그동안 아빠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문득 내가 급격히 우울해졌던 시기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되돌아보니 그 날의, 그 사건이 기억났다. 그때는 마지막인 줄 모르고 했던 말과 행동들이 내 마음에 멍자국처럼 남을 줄은 몰랐다. 말없이 떠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었을 말이 무엇이었을까 밤마다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오랜 시간 앓고 아플 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야 깨닫는 걸까. 어쩌면 떠나야만 배울 수 있는 삶의 흐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마음에 남는 흉터들은 결국, 내 스스로가 순간순간 더 사랑하지 못하고,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손 잡아주지 못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었다.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내일 당장 볼 수 없게 된다면 밀려오는 그리움들이 내 마음에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때로는 잠잠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세차게 나를 흔들어 깨울 테니.
미운 마음이 드는 어느 순간에도 사랑만 생각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