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

by 서울경별진

내가 살아본 집중에 가장 형편없었던 집은 여덟 살 에서 아홉 살, 그 때였던 것 같다. 배나무를 키우는 곳 옆에 작은 쪽방 집이었다. 그곳은 주인집 한 채와 2평 정도 되는 쪽방 5개가 딸린 집이었다. 그곳은 자취집, 하숙집 같은 개념이어서 가족들이 살기에는 턱없이 작은 집이었다. 집안에 화장실도 없어서 대문 앞에 나가면 있는 일명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화장실은 밤에 혼자 갈 수가 없어서 언니와 나는 항상 화장실을 같이 갔다. 손전등은 우리의 필수품이었다. 우리 집은 대문 안쪽에 줄줄이 붙어있는 집중에 하나였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그곳에 한 아주머니가 살았었는데,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 그 방 아주머니를 문간방 아줌마라고 불렀다. 문간방 아줌마는 이혼을 하고 혼자 사셨는데,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줌마 집의 창문이 바로 있었다. 주인집 오빠와 나는 가끔 아줌마의 집을 엿보곤 했다. 집안을 보려면 발판을 딛고 올라가야 했다. 당시 우리는 무척 작았기에 발판 위에 무언가를 잔뜩 올려놓고 발뒤꿈치까지 들어 올려야 겨우 보였다. 주인집 오빠는 언니와 동갑으로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아줌마의 집을 엿본 이유는 살아있나 보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아줌마는 술을 마시다 못해 몸에 술을 붓고 살았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면 언제나 술 찌른내가 났었다. 그 냄새는 처음 맡아본 냄새였고, 여태까지 살면서도 다시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아직도 그 냄새가 선명하다.


아줌마는 우리가 창문을 열면 우리를 보면서 웃어주거나, 과자를 주곤 했다. 어쩌다 한번 정도 아줌마가 술이 깨었을 때는 문을 열어놓곤 했다. 그러면 나는 가서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거나, 키우는 개와 같이 놀고는 했다. 아줌마에게는 나보다 어린 자녀가 있는데 남편이 데려가서 자기는 이제 아이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인데 너무 예쁜 아이라고 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나를 안고 울기도 했다. 아줌마에게 아주 가끔씩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었다. 어느 날은 그 아저씨가 오랜 시간 그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싶어서 오빠와 나는 또 창문을 들여다봤다. 그러면 아줌마는 우리가 아줌마를 걱정하는 것을 알았는지 웃어주었다. 내가 아줌마를 걱정한 이유는 그때도 우리 집에는 빚쟁이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었다. 나는 그래도 엄마가 함께 있었지만 아줌마에게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도 있고, 항상 술을 비정상적으로 마셨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날도 하루 일과처럼 문간방 아줌마의 안부가 걱정되어 창문을 열었는데 아줌마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아줌마가 평소와는 좀 다른 것을 느끼고 어른들에게 알렸다. 얼마 후 소방차와 빨간 차를 탄 아저씨가 왔고, 그 뒤로 우리는 문간방 아줌마를 볼 수 없었다. 이후에 들은 소식은 아줌마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삶의 전부가 되는 때가 있다. IMF 시절,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혼자 호주로 돈을 벌러 나가셨다. 우리는 몇 번 오지 않는 아빠의 전화 한 통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 지금은 남겨진 아빠의 편지들을 읽으며 아빠를 또다시 그리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미움보다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