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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의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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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Sep 26. 2022

세탁소 사장님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아주 중요한 목적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단지 사회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한다는 것. 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청소를 하는 일이, 가족을 돌보는 일이, 요리를 하는 일 등이 말이다. 쉬고 있는 것도 사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쉼’이라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간혹 ‘네가 하는 일이 뭔데?’, ‘네가 한 게 뭐 있어?’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가장 먼저 생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 등 부정적인 생각이 바로 내 머릿속을 뚫고 들어온다. 그렇게 시간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마치 그게 진짜 나인 것처럼 스스로에게 화살을 겨누고 만다.


무엇이든 쌓이기 시작하면 무언가가 나타나고, 생기게 된다. 만들어지는 것은 단순히 시작되면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원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숨을 쉬는 것부터 우리는 하고 있다.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큰 영향력이나, 영감, 힘, 용기 등 다양한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어떤 이들의 눈에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우리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고, 해내고 있다.


매일 수십 개의 옷을 고르고, 입어보는 일을 하지만 간혹 다른 쇼핑몰의 옷을 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한참 고르다가 마음에 드는 슬랙스를 하나 발견했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집에 와서 꼼꼼하게 사이즈와 기장을 보다가 내 키와는 맞지 않음을 알게 됐다. 키가 작을 경우에는 밑단을 수선해야 한다는 문구였다. 나는 실패 없는 완벽한 주문을 위해서 후기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장을 수선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세탁소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한참 주문을 망설이다가 이틀이 지났다. 다른 슬랙스를 찾아보다가 아른거리는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그 슬랙스를 주문해버렸다.


나는 슬랙스가 배송되자마자 입어보고 기장을 체크한 뒤, 출근 가방에 넣어서 출근을 했다.


점심을 먹고,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세탁소를 간다고 했더니 옆 건물에 있는 작은 세탁소를 가보라며 추천을 해주었다. 사실 우리 회사 건물에 세탁소가 세 개나 있다. 세탁소 가는 게 귀찮아서 슬랙스 주문도 고민했던 나에게 옆 건물로 가라고 하다니. 더욱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잘해주신다고 하니 가보기로 했다.


회사 건물에 있는 세탁소들은 크기도 하고, 양이 많아서 복도까지 옷이 늘어져 있다.


하지만, 추천해준 세탁소는 5평 남짓한 평수에 오래된 정장 몇 벌만 걸려 있었다. 나는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미싱 한 대, 오바로크 한 대, 다리미판, 테이블 하나가 다였던 것 같다. 사장님은 돋보기를 쓰시고, 작은 핸드폰을 가로로 놓고 야구를 보고 계셨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장님은 그 시간에 많은 것을 하고 계셨다. 야구를 보고 계셨고, 쉬고 계셨고,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는 60~70대 정도 되어 보이셨다. ‘안녕하세요. 기장 한 단만 줄이고 싶어서요.’ 사장님은 바로 일어나 바지를 가져가 내가 접어둔 곳을 다리미로 한번 누르시고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시고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셨다.


나는 사장님의 솜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사장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마치 그분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았다. 10분도 안돼서 수선된 옷을 받았다. 다림질까지 해서 고이 접어 내게 건네주시는 모습이 무언가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4천 원입니다.’ 나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어 두 손으로 드리면서 ‘우와~너무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으로 생각했다. ‘바짓단 줄이는 일이 이렇게 감동적이라니.’ 자신의 일이 어떤 일이든지 크기와 상관이 없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만 있다면 보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 그리고 필요한 사람의 필요를 계속 채워주며 살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탁소 사장님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나는 순간, 하고 있다는 것의 경계와 시선이 걷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를 조금 더 무겁게. 존중하며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들었는데,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을 평가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네가 하는 일이 뭔데?’, ‘네가 뭘 했다고 그래?’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은 쉴 새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여전히 하고 있다. 숨을 쉬고 있고, 생각을 하고,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무기력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보이는 것까지 차곡차곡 쌓아서 감동적인 삶을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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