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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의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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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Aug 12. 2022

내 집이 있다는 것

비가 오면 아파트 단지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잘 곳을 찾는다. 주로 자동차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집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론 고독하기도 하고, 울타리가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내 집이 있다는 것. 따뜻하고 평범한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의 큰 평안을 주는지, 나는 서른 중반이 돼서야 깨닫는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다양한 집에 살아봤다. 일곱  때였던가, 처음으로 밤에 집에서 도망을 쳐봤다.


  칸짜리 집에 살았을 때다.  식구가 겨우 누워  공간이었다. 그곳도 임시거처였을 ,  집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새벽에 아빠 엄마 없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걸어 나와 집 밖에 기다리고 있던 파란 트럭을 타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날 우린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이다. 나는 사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삶들이 내내 IMF였다. 가끔 불우한 가정환경이 범죄자를 만든 다는 내용을 보게 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댔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사다.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집 없이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무척이나 초조하고, 불안한 일이다.


하루 종일 일에, 사람에 치이다가 밤이 되면 내 몸하나 누울 곳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작은 침대, 따스한 조명, 은은한 디퓨져, 잔잔한 음악이 어느 날엔 큰 안식이 된다.


어두운 밤이 와도 잘 곳이 없는 것,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쉴 곳이 없는 것만큼 불안정한 것은 없다.


하지만, 집이 있어도 정서적으로 잘 곳이 없거나, 마음이 쉴 곳이 없을 때가 있다.


인간에게는 항상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안정과 쉴 곳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집이 없어도 정서적인 집은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집이 있지만 정서적인 집은 없는 것처럼.


길고양이들은 아파트 단지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을 만든다. 가족이 생기면 누군가가 작은 집을 지어 주고, 새끼들에게도 먹이를 준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봤을 때 안전한 집은 없다고 보이지만 그들은 정서적인 무엇을 찾았기에 단지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각자에게 필요한 그것을 찾기 위해 헤매는 길고양이들과 닮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모두가 누군가의 의해 어떤 삶에 내던져져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등 떠밀려 이 세상에 떨어져 사는지도 모른다. 마치 자동차 위로 떨어져 그곳을 침대로 삼은 고양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잠든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내가 기척을 내어도 깨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진 것 같다. 이토록 넓고, 이토록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으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보호로 우리는 넓은 곳들을 누비고, 잠이 들 곳을 기어코 찾아내니 말이다.


무엇을 바라던지, 바라지 않던지. 찾고 찾으면 우리는 언젠가 그곳을 가게 된다.


진짜 우리 집, 또는 마음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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