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별의 유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경별진 Nov 12. 2022

꽃 같은 이십 대

10년 가까운 회사생활에 군것질과 커피는 업무시간 동안의 나의 절친한 친구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몸의 균형이 다 틀어지고, 수술도 했었기 때문에 몸의 관리가 시급했다.


그렇게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6개월 됐다. 나는 내가 그동안 운동을 안 해서 그렇지, 하게 되면 꽤 유연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있는 옆 회원님보다 뻣뻣한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두 가지를 생각해봤다. 몸이 너무 많이 굳었거나, 원래 뻣뻣하거나. 왜인지 두 번째 이유는 피하고 싶어서 열심히 몸을 늘려보지만 내 집착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다리를 뒤로 올려 천장으로 올리는 같은 동작을 어린 친구는 곧잘 한다. 나는 겨우 다리를 들어 유지만 할 뿐이다. 그럴 때면 나이 70세는 된 할머니처럼 ‘역시 젊은 게 좋구먼.’ 하며 속으로 말한다.


3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이십 대가 얼마나 꽃같이 이쁘고 아름다운 나이인지 새삼 자주 느끼게 된다. 그 예쁜 시기를 어떻게 잘 보내야 했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만, 이제 내게는 다시 오지 않기에 그들을 보면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최근 이십 대의 사망사고가 뉴스에 많이 보인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안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이미 그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제 보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 지침들을 잔소리로 치부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을 얼마나 안전하게 잘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어른들은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브레이크에서 소리가 나서 카센터에 가야지 하고는 귀찮음에 안 가다가 며칠 전에 차를 맡기게 되었다. 다행히 브레이크는 문제가 없는데 엔진오일이 심각하다면서 그렇게 자주 갈지 않을 거라면 비싼 거로 교체를 하라고 전화가 왔다.


차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전에 타던 차는 경고등이 떴는데 이번 차는 경고등이 안 떠서 갈아야 할 때를 모르고 지나치게 되어 심각한 상태였다.


비싼 오일은 가격대가 5만 원이나 더 비싸서 어쩌지 하며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대표님이 옆에 계시다가 전화를 받아주셨고, 굳이 비싼 오일로 교체는 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에 차를 가지러 갔는데 정비사님께서 잊지 말라고 다음 엔진 오일 교체 날짜 스티커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주시고, 신용카드에 무료로 제공되어 있던 정비 쿠폰도 찾아서 적용해주어 2만 원이나 할인을 받고 저렴하게 교체를 하게 되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내가 잘 살아갈 수 있게끔 여러 도움을 주셔서 살아가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꼭 이런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 퇴근길에 막무가내로 차선을 바꾸거나, 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켜도 절대로 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면 팍팍한 삶의 일부를 보게 된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사고 두 번, 퇴근길에 사고 두 번을 목격하기도 하고, 얼마 전 퇴근길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쪽은 껴달라고 클랙슨을 울리고, 다른 쪽은 껴주지 않겠다며 클랙슨을 울렸다. 매일 얼굴이 아닌 차에 숨어 서로 대치하는 모습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인간 안에 깃든 이기심에 치를 떨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을 먼저 보낸 어른이 젊은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친절함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서로가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최소한의 겸손으로라도 어른들의 지침들을 듣고 따를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어른에게만 배울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은 키오스크가 있는 곳이 많다. 주차비를 결제하려고 기다리는데 앞에 어르신이 결제를 못하고 계속 반복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이 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한 템포 기다렸지만 안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알려드렸다. 어른들도 처음이라 어려운 것들이 있고, 빠른 시대에 맞추어 살아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은 젊은 친구들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다. 그래서 더 잘 누리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운동을 끝내고 신호가 걸린 가전제품을 실은 트럭을 지나쳤다. 트럭 안에 아빠와 아들 같은 나이의 직원 둘을 보게 되었다. 얼굴이 하얗고 어려 보이는 것이 이십 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청년과 오래 그 일을 해오신 것 같은 베테랑 어른의 모습이었다. 토요일에 근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니 보기가 좋았다.


물론, 한 장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좋은 어른에게 좋은 것들을 배우게 될 청년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받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신 신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아침 영화 프로그램을 보는데 이런 멘트가 나왔다. ‘불행은 동행을 좋아한다,‘ 머리를 탁 치는 멘트였다. 아프면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멘트였다.


불행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며 살아가는 것. 가족을 넘어서서 서로에게 좋은 것들을 알려주려, 도와주려 노력한다면 내가 로망 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불행은 동행을 좋아한다는 말에 공감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동행을 좋아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탁소 사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