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위해 오늘도 살아낼 수 밖에
나는 아직도 내 마음에 담았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에 고통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 생각만 하면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아빠가 팽대부암 판정을 받은 후에 할머니도 담도암 판정을 받으셨고 나이가 많으셔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혼자 살던 외삼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외롭게 돌아가셨다. 불과 지난 3년동안 세명의 가족이 곁을 떠났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이별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릴 틈도 없이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또 다음 이별을 준비한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처음 산 중고 재봉틀을 팔았다. 집에 두기엔 크기도 하고, 안 쓰는 물건을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했다. 아직도 가끔 재봉틀이 생각난다. 그때 사진을 찍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싫다. 아직도 옷장 속, 서랍 속에는 아끼는 것들로 가득하다. 정리는 잘하지 못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다 기억할 정도다. 생명이 없는 것도 이렇게 소중한데, 살아 숨 쉬는 존재는 내게 얼마나 더 소중한지.
일을 하면서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사이가 좋았던, 좋지 않았던. 곁에 있는 상대가 언제 떠날지 모르고 했던 건조했던 행동들이 헤어지고 나서야 더 사랑해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돌아올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우리는 사랑보다 이별을 더 자주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죽음을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잘 사는 것 만큼, 죽음도 잘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을 떠나 보낼때도, 주변의 다른 가족들을 보아도 우리는 생각보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헤어지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 읽었던 책이 '죽음의 에티켓' 이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아빠의 신음소리를 처음 듣고 서로의 눈만 봐도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알기에,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쩌면 서로를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그저 곁에 머물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켜줄 뿐이다.
어느 날부터 집에 오면 아빠와 엄마가 내게 “애썼다.”라는 인사를 하셨다.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늦은 밤 버스가 끊긴 시간에 고단한 몸으로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문소리에 일어나 문 앞까지 나와 내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주던 아빠, 엄마가 좋았다. 지금은 퇴근하고 집에오면 엄마를 안아준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면 마음과 마음이 대화를 한다. 피곤으로 잔뜩 부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그대로 잠이 드나 했지만 등진 어깨 뒤로 가느다란 말이 새어 나온다.
'우리 행복하자.’
우리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결과를 알고 살아갈 때도, 모르고 살아갈 때도 있다. 어떤 일에는 결과를 알고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어차피 길은 정해져 있으니 계획대로 살면 좋을 거야. 하면서 말이다. 언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가 오기 전까지는 평안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모르고 사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결과를 알고 지내는 동안에 일어나는 무수한 감정의 기복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에 느껴야 하는 많은 여운과 잔재들.
사랑은 나도 모르게 스며들기도 하지만, 결심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인간의 감정은 어떤 것으로도 증명하기 어렵다. 사랑에 이토록 서툰 내가, 결국 사랑 때문에 또다시 살아간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가족, 꿈, 일, 책, 그림, 음악, 길가에 핀 꽃, 나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이렇게 가득하다. 그러니 두렵지만 오늘도 살아. 사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