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고 지키고

by 서울경별진

가족들을 종종 위험에 빠트리는 아빠를 떠나지 못했던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 많은 상황들 속에서도 우리 가족을 지키려고 노력하셨다. 엄마는 밤마다 울면서 기도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매일 기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엄마도 어릴 적 어렵게 사셨고 마음 붙일 곳 없이 사셨기에 신혼 때 아빠와 엄마는 "이제 우리 둘 밖에 없고, 우리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며 살아왔으니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자.”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처음 들었는데, 우리는 여태까지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지켜내려 애쓰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기에 언니와 나도 엄마의 뜻을 따랐다. 언니와 나는 아빠가 어떤 일을 해도 흩어지지 말고 가족을 지키자고 약속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무슨 일이 생겨도 아빠를 탓하기보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나는지, 빚 때문에 또 다른 빚을 지고 대출 사기까지 당해서 겹겹이 빚이 쌓여만 갔다. 아빠가 내 이름으로 진 빚은 아빠가 매달 겨우 갚고 계셨지만 사채업자들에게 당장 갚을 돈이 없어서 일을 꼭 해야만 했다.


아빠는 언니가 일을 하는 것을 안 좋아하셨다. 언니는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에게도 취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당장 엄마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아빠는 사기를 당한 뒤로 스스로 자책을 하며 매일 술을 드시고 오셨고, 우리들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말이라도 걸면 없는 사람처럼 대하셨다.


우리 상황을 알게 된 친척들이 가끔 집을 방문하셨는데 그때마다 내게 식당일이라도 하라고 하셨다. 식당은 못해도 200만 원은 벌 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또다시 상황에 쫓겨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 선택으로 인하여 내 존재 자체가 초라해지는 것이 싫었다. 왜냐하면 절박한 때에 선택한 그 자리가 영원히 내 자리가 될 것만 같아서 그게 두려웠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꿈을 지키는 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소원이자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 말들을 듣고 나서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방에 들어가 소리 없이 울었다.


나는 여태 무언가에 붙잡혀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스물일곱이었던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몇 년 동안 빚을 갚아야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의 근처도 못 가보고 인생이 끝나버리겠구나. 지금도 나를 써주는 회사가 없는데 서른 살이 훌쩍 넘은 내게 누가 일자리를 줄까. 당시에 이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내 상태는 그랬다. 나는 가족들을 보면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거울을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족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들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주어진 상황들을 묵묵히 보내고 있었다. 우리 셋은 여러 번 겪은 일이라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했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 아빠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했고, 한 달 만에 암이 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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