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사랑해

by 서울경별진

아빠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셨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아빠는 희귀 암이라서 신약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완벽히 나을 수도 없는 병 때문에 아픈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아빠는 자연치유를 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암은 재발했다. 아빠는 재발한 이후로 3년을 더 버티셨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아빠의 속은 달랐다. 아빠는 정기검진을 가지 않으셨다. 증상이 조금 심해질 때 한번씩 다녀오셨는데, 우리에게 아빠의 상태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병원에도 혼자 예약하고 몰래 다녀오셨다. 우리는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물어보면 화를 내거나, 혼자 가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아픈 것을 잊기 위해 다른 일에 더 몰두하셨다. 그리고 음식을 많이, 자주 드셨다. 어느 책에서 투병환자들은 나중에 못 먹을 것을 생각해서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 폭식을 하게 된다고 쓰여 있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도 그랬다. 아빠는 새벽에도 일어나서 밥을 드셨다. 우리는 아빠의 모든 행동들이 아팠다.


한 번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나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우리에게 "앞으로 나 진짜 열심히 살아보려고!”라고 하시며 기분이 좋으실때도 있었다. 밝게 지내시는 모습이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목소리가 큰 편이고, 용접을 하게 되면 소음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기 때문에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처럼 우렁찼다. 그런 아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면 몸에 온 힘을 주어야 쉰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그런데도 병원에는 안 가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현재 어떤 상태인지와 약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원을 가셨다.


아빠는 병원에 혼자 가기 원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날도 문자를 남겼다. 진료를 마칠 시간이 되어 다시 문자를 남겼더니 전화가 왔다. "약이 없대. 내일은 내과에 가서 진통제나 받아와야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적이 흘렀고 나는 울음을 삼켜야 했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힘주어 말하시다가 내게 “들리냐?”라고 하셨다. '들리냐.'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지다 못해 아려왔다. 나는 눈물을 참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맛있는 거 사갈게,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맛있는 거.”

우리는 서로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아빠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드리거나, 사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 아무 일 없는 듯이 살다가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면 온 세상 슬픔이 심장 깊숙한 곳까지 내리꽂는 기분을 느꼈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걷거나 무리하게되면 코피를 쏟으시거나, 화장실을 자주 가셨고,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힘없이 누워있는 아빠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스치듯이라도 그 생각에 빠져들게 되면 다른 일은 못 할 정도로 정신이 없어졌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책상에 커피를 쏟고, 뚜껑 닫힌 도장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고, 퇴근 후에는 아세톤으로 화장을 지우다가 냄새에 놀라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지 못했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도, 나도. 목소리를 통한 사랑의 전달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에서처럼 마법이 풀리는 비밀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만화에서 주는 순수한 교훈들을 찾아본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 마법에 걸린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마법에 걸린 거라면 좋겠다. 그렇다면 풀릴 방법도 있다는 것이니.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해서 더 애가 타고 아프다. 그 말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할 수가 없었다. '사랑해'라는 말이 가진 힘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지켜내고 지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