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화점 판매원은 그만두고 원단 회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원단 회사에 들어간 것은 의류 일은 하고 싶은데 들어갈 수 없으니 연관된 일을 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을 습득해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부장님께서 다음날 바로 출근하라고 하셨다. 내가 다녀본 곳 중에 가장 좋은 회사였다. 그곳은 강남에 있었고, 해외 의류회사에 납품할 원단을 제작하고 수출하는 곳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샘플 실에서 원단을 종이 크기에 맞춰서 오려주는 일이었다.
또 필요한 서류들에 오린 원단을 붙여주거나, 복사 같은 잡일들을 했다.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직원들의 출근시간은 8시 30분이고 퇴근시간은 알 수 없었다. 나는 9시 출근에 6시 퇴근이었는데, 직원들은 내가 출근하면 회의 중이라 자리에 없었고, 퇴근은 내가 먼저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곳에 없는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좋아 보였다.
내 자리는 부장님 책상 바로 옆에 붙어있는 원형 테이블이었는데 쉬는 시간에는 부장님 옆에 앉아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막 스물 일곱이 된 나이였다. 나는 가끔 우체국 심부름도 갔다.
희한하게 우체국 심부름을 갈 때마다 전화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항상 첫 질문이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우체국에 간다고 했다. 두세 번 그렇게 대답했더니 어느 날부터는 내게 우체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농담도 즐거울 만큼 우체국을 가는 것도 좋았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
회사에는 나랑 또래인 직원들이 있었는데,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다니고 있었다. 직원들은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도 써주었고 정말 친절했다.
그들이 내게 친절했다는 것을 계속 쓰는 이유는 나쁜 기억만 머릿속에 깊이 남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억도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단에 대한 패션 단어나 유통과정 등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열심히 일하고 질문했다. 그러면 직원들은 자세히 알려주었다. 가끔 버리는 원단을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나는 얻어온 원단들로 주말에 재봉틀 연습을 했다.
직원들은 평소에 정장을 입다가 금요일에는 자유 복장으로 입었었는데, 그것마저도 멋있어 보였다. 직원들은 점심 회식 때도 나를 데려가 주고, 가끔 지방에 있는 창고에 원단을 가지러 갈 때도 나를 데려가곤 했다. 차장님은 내게 직원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이 회사에 다니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랑 동갑인 직원의 월급이 꽤 괜찮았고, 고졸인 내가 입사한다면 거의 대기업 수준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입장에서는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직원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곳은 초 대졸부터 입사를 할 수 있었는데, 내게 어디 대학을 나왔냐고 물어보시고는 그 뒤로 내게 입사제의를 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 나는 몇 달을 더 다녔다.
당시 나랑 동갑이었던 직원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원단 회사에 다니는 게 꿈이라서 대학도 섬유 과를 나왔고, 회사도 원하던 회사를 다니는데, 그 꿈을 이뤄서 그런지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순탄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꿈을 이루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하다 내린 나의 결론은 꿈을 더 크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꿈과 계획을 가지고 그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작은 계획들을 세운다면 작은 계획들에 도달했을 때 회의감이 아니라 성취감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전까지 계획들을 해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