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아있는 것

by 서울경별진

우리 동네에 중학교는 3개뿐이었다. 당시에는 랜덤으로 학교가 배정되었는데, 나는 우리 집과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에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엄마에게 버스 타고 학교 가는 법을 배웠다. 한 번은 신호가 걸려서 언니랑 같이 뛰어가다가 내가 먼저 버스를 타고 언니가 뒤따라 타기를 기다렸는데 기사님이 언니를 태워주지 않아 놀란 마음에 버스 안에서 운 적이 있다. 학교가 멀어서 언니랑 항상 꼭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없던 때였는데, 그때 어떻게 다녔는지 생각해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아무튼 중학교가 먼 거리였지만 스쿨버스가 있었다.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버스 의자가 창문 쪽으로 세로로 되어있고, 하얀 바탕색에 창문 아래 곤색 줄이 두줄 그려져 있는 오래된 옛날 버스였다. 우리는 집에서 5분 거리 앞 지정된 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왔다. 아침에 딱 한번 학생들을 태우고 가고, 하굣길은 두세 번 정도 운행을 했다. 남녀공학이었던 우리는 그 시간에 학교 오빠들을 보는 설렘에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은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갈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자리가 비어있을 때도 있었다. 늦잠이나 늦장이라도 부리면 스쿨버스를 놓쳐서 멀리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일반 버스를 타야 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겨울이었다. 아침잠도 많고, 눈이 너무 많이 오기도 해서 버스를 놓치게 되어 멀리 있는 일반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동네가 산 아래에 있어서 경사가 많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면 길이 많이 막힌다. 한 시간쯤 기다려서 겨우 버스를 탔는데, 같은 학교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내가 탄 버스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나는 11시가 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학교에서 크게 혼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감선생님이 교문부터 직접 눈을 치우고 계셨다. 학교가 작기도 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해주셨던 분이라 인사 몇 번에도 학생들을 기억해주시곤 했다.


학교에 11시가 넘어서 들어간 적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으시며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물 컵에 물이 한 모금 정도가 남아있다고 하면, 너는 어떤 생각을 하겠니?" 나는 이 질문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이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주제로 나왔던 부분이었는데, 나는 책에서 읽은 완벽한 대답을 선보였다. "이거라도 남았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책에서 본 대답은 먼저 한 대답과 "이것밖에 안 남았네."라는 대답까지 두 가지였다. 나는 속으로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시지. 내가 읽은 책을 선생님도 읽으셨나.'라고 생각했다. 교감선생님은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앞으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해. 사람들은 조금 남은 물을 보면 이것 밖에 안 남았다면서 불평하는 게 대부분이지."라고 하셨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내게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이 생각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늦은 지각을 했던 내게 남은 수업시간을 다행이라 여기라는 뜻으로 해주셨던 말씀 같다. 이제는 수업시간이 아닌, 내 삶에 이 생각을 적용해봐야 할 것 같다. 컵 속 물의 양이 90이라고 하면 나는 아직 3/2가 남아있는 것이다. 내게 남아 있는 물, 내게 남은 시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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