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첫 담임 선생님은 스물여덟의 긴 생머리 여자분이셨다. 선생님도 첫 담임을 맡게 되어 우리 모두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모두 아빠 엄마 나이 또래였기 때문에 어린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대해주셨다. 똑똑하고 바르게 자란 듯한 모습에 나도 크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 결혼할 사람도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20대의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도 선생님처럼 스물여덟엔 직업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주말에는 집에만 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에 아역으로 나온 귀여운 여자 배우가 주인공인 '너를 만난 여름'이라는 영화를 봤다. 남자 주인공은 공부를 잘하는데, 여자 주인공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주의 엄마가 담임 선생님에게 짝이 공부를 못하니까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짝을 바꿔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들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상황이거나, 본인의 경험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한다. 어릴 때는 영화를 보면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 한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어떤 하루가 기억났다.
고등학교때 친구들의 장난으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또래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나는 보통이었다. 우리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같이 공부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고 했다. 그러다 졸업할 때쯤 되었을까, 어느 날 그 친구의 엄마에게 문자 한통이 왔다. 장문의 문자였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데 내가 옆에 있으면 안된다고 아들의 인생을 망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대학을 가지 않아서 였을까. 내가 뭐라고.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움직일만한 존재가 아닌 고작 열아홉이었다. 조금 억울했지만 나는 내가 있을 자리를 너무나 잘 깨달아서 그 친구와 조용히 연락을 끊었다. 영화 속 장면을 보면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때의 내가 기억나 안쓰러워져서.
이후에 남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여주와 힘든 이별을 하게 되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서처럼 현실과는 상관없이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현실에서는 사랑도 이기지 못하는 아주 단단한 벽에 마주할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 벽은 결국 혼자가 아닌 둘일때 넘어갈 수 있는 것 같다. 그 문자를 받은 이후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누군가와 내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내 삶을 깊이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까. 그 사람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를 반대해서 내가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들이 떠올라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늘 로맨틱한 만남과 사랑을 기다린다. 내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게 해줄 따뜻한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