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과 이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 것 같다. 사랑을 하는 것보다. 어떤 일은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거나, 옆에서 가까이 그 사람의 변화를 지켜 보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가족들이 떠나기 전에는 그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 슬픔이 어느 깊이까지 내려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지켜보고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떠나는 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남은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빠의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나는 야근을 하고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아빠의 장례 후에 혹시나 우리에게 남긴 편지가 있지는 않을까, 울며 서랍을 뒤졌다. 이제 아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었는지, 사랑한다는 말을 남겨두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고, 듣고 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후로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처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가족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따뜻한 이별보다는 차가운 이별이 더 많다는 것. 용윤선 작가님의 '울기 좋은 방'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미워하다가 그 사람이 잘 안되거나 아프거나, 혹은 세상을 떠나면 그땐 어쩌려고 그러니.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미워하지 마라.' 이 구절 하나로 관계의 대한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사랑까지는 잘 안되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자.
예쁜 이름과는 다르게 아픈, 작별과 이별.
할아버지는 외삼촌이 급작스럽게 떠난 뒤로 치매 증상을 보이셨다.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과 반대편에 있어서 조금 먼 거리이다. 치매 환자에게 새로운 장소는 위험하기 때문에 거처를 옮길 수가 없었다. 증상이 심해지자 보호소에서 돌봐주시기 시작했고, 우리는 할아버지 댁에 한 달에 한번 장을 봐드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오고는 했다. 아빠가 떠난 뒤로 할아버지를 보며 아빠 생각을 가끔 했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면서.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내게 '너는 누구냐?'라고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2년을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랑 산책도 하고, 내게 결혼은 안 하냐며 남자는 곡괭이질만 할 줄 알면 먹고 살 줄 아는 남자라며 농담도 하시곤 했다.
지난 8월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 댁에 갔다. 할아버지는 밝게 웃으며 '왔냐!'라고 하셨다. 다른 때보다 더 밝고 기운이 넘쳐 보이셨다. 백발에 안경을 쓰신 모습이 영화 '업'의 주인공 할아버지와 닮아서 그 영화만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일반적인 대화는 어렵지만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이틀 뒤, 우리는 보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이틀 전만 해도 밝게 웃으시던 할아버지였다.
우리의 마지막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면회가 금지되어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에도 내가 밝게 웃었던 모습만이 남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는 또 이렇게 이별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