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나의 모습이라고 해서 내가 나를 버릴 수는 없다. 나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책임지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 이런 나라도 내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준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남들의 놀림거리인 내 목소리가 좋고 안쓰럽다.
지금도 목소리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간혹 생긴다. 예전에 회사에 접수된 클레임 때문에 통화를 하면 고객들은 항상 한결같이 “당신이 팀장이야? 목소리가 너무 어린것 같은데?” 사실 목소리만으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나는 목소리만으로 내 능력을 평가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장난으로 동요를 틀어주거나 했는데, 그때는 그저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으니, 어느 날 나를 안 좋아하는 친구들이 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뒤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일할 때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어떨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내게 목소리를 바꾸라고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본인들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때 상대가 고칠 수 없는 태생적인 것들, 또는 순간의 실수를 공격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굳이 아픈 말들로 서로를 아프게 할까. 서로 아프게 하지 않아도 아픔들은 있을 텐데. 이런 여러 가지 일들로 나는 말하기보다는 쓰기에 더 마음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바꿔보려 부단히 애를 썼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노력해서인지 조금 변하긴 했지만 지금은 내 목소리가 참 좋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인만큼, 내 목소리도 세상에 하나뿐이니까.
나는 엄마와 언니의 영향으로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즐겼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글은 잘 써질 때도 안 써질 때도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정말 좋은 글이 써졌을 때가 있다. 나는 내 글도 좋다.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좋을, 사랑해줄 글을 쓰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나 스스로 내 글에 만족을 느낄 때만큼 희열을 주는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만드는 것만큼, 스스로가 만족하는 것들에 만족하는 법 또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내 스스로가 해낸 결과물들은 세상 누구도 만들 수 없는 하나뿐인 것이다. 그러니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것을 먼저 사랑하기로 했다. 나조차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것 같아서. 내가 나에게 하는 모든 것은 내 자신의 첫사랑과 같다. 나의 결심, 생각들을 가장 먼저 알고 듣기 때문에. 모든 일에 무던해지려면 내 시선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 누가 뭐래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떠한 상황이든, 내 마음이 행복하다면 그곳은 언제나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