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내게 기대

by 서울경별진

나는 왼쪽으로만 기대어 자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왼쪽 창가의 빈자리를 찾아 앉는데, 그 이유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자기 위함이었다. 내가 왼쪽으로만 기대어 잠든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고는 신기했다. 야근을 하고 10시나 11시에 퇴근하고 나면 새벽 12시나 1시에 집에 도착했다.


씻고 잘 준비까지 하면 2시쯤 되었다. 출근을 하려면 6시에 일어나야 하니 4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곧장 잠이 들곤 했는데, 깊은 잠에 빠지면 항상 창문에 머리를 박곤 했다. 가끔은 너무 세게 박아서 멍이 든 적도 있다. 아니면 한 버스에서 두세 번 박는 다던가.


그러면 창피하지만 쏟아지는 잠 때문에 또다시 잠이 들고는 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을 알았다는 것이.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다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다 보면 상대가 싫어한다고 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어쩌면 그렇게 상대를 위해 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원래의 내가 어땠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게 되는 것 또한 이전에는 내가 몰랐던 사람인데, 이제는 내가 아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변화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가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힘듦이라는 것은 자신이 겪은 것 외에 상대의 힘듦을 인지하고 함께 느끼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일하는 곳이 너무 덥다고 하는데,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아서 얼마나 더운지 알기가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만이 제일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고. 사실 제일 힘들 때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저 '내가 항상 옆에 있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이 많은 안정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지켜야만 하는 자리에 있다가 누군가의 보호를 받게 될 때면 큰 안정감을 느꼈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의 아픔이나 상처를 가지게 되곤 한다.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가 내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또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내 마음도 함께 아파올 때가 있었다. 그때는 상대가 겪은 마음의 고통이 내게도 전달되는 것만 같다.


때로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누군가의 고통도 내게 강하게 전이되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거나,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어야 했다. 세상은 어쩌면 혼자 살아가는 법을 더 많이 알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기댈 곳이 되고는 한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증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기댈 줄도 알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그 균형을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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