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아빠와의 사이를 보면 친구들이 애교도 부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아빠는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시곤 했다. 자녀와의 친밀함이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생겨나는 것인데 아빠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어린 시절에 아빠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빠는 가끔 뉴스 같은 것을 볼 때 "누가 우리 딸들 괴롭히면 나는 가만히 못 있어."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때만큼은 진심이었으리라 믿는다. 아빠의 마음은 우리를 사랑했겠지만, 나에게 하는 말들은 뾰족하고 아픈 말들이 많아서 상처 받고 울었던 기억이 더 많다.
아빠가 우리를 생각하는 구나라고 느낀 건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는 말로 하는 저런 말들이었다. 아픈 말들과 아픈 삶만을 주고받는 것 같았던 그때, 나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버텼다. 둘 중 누구 하나 다른 길로 빠져나가지 않았기에 나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미워하는 마음이 컸다.
이 마음은 쉽게 용서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원망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쌓인 것들이 딱딱하게 굳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 나는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며 지냈다. 용서하고 싶다고 울며 기도해봐도 용서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사랑하는 것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공존하는 듯 했다. 나는 아빠가 상처를 받는 것도 싫어서 아빠가 상처 받지 않을 내 기준의 선을 그어놓고 더는 다가가지도, 선을 넘게 하지도 않았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들은 내 본성을 거스르고 그들을 위한 행동을 함으로 나 자신을 고통 속에 가두는 것과 내 본성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이 그들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에 남을 상처가 안쓰러워 결국 나는 나를 고통 속에 가두는 것을 택했다. 그들을 위한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것은 왜 내 본성을 거스르는 것처럼 어렵고, 고통스러운 걸까.
나는 아빠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빠가 살아온 삶 자체가 불안정했고,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셨으리라 생각한다. 아빠 또한 우리가 힘겨울 때 종종 집을 떠났지만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빠에게는 우리 밖에 없었다.
아빠가 떠나고 몇 달 뒤에서야 아빠를 온전히 용서할 수 있었다. 마음에서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가 내게 미안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사람 많은 곳에서 엉엉 울며 아빠를 용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