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느릿느릿 후쿠오카

by 보회미안

걷기를 좋아하는 엄마와의 여행은, 늘 그렇듯 많이 걷는 게 기본이다. 천천히 걷고,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조식을 먹는 고요함이 테마다. 후쿠오카, 유후인은 그런 점에서 아주 적합한 여행지였고, 료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엄마와의 느린 여행을 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은 몇 년 전의 홍콩-마카오 이후로 두 번째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던 후쿠오카의 3월은, 길가에만 덩그러니 서있어도 ‘아 봄이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곳곳에 피어있던 벚꽃 덕분이었다. 여의도 벚꽃축제나 석촌호수 벚꽃축제와 같은, 사람이 벚꽃보다 많은 축제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집 앞 탄천에서 늘 벚꽃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일본에도 후쿠오카성 벚꽃 축제라는 게 있는데 여기는 한국 벚꽃축제와 다른 게, 높은 곳에서 아래로 벚꽃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다. 200~300그루의 빼곡한 벚꽃 나무를 한눈에 내 시야에 담아보긴 처음이었다. 하늘에서 누가 팝콘 통을 통째로 거꾸로 엎은 듯, 새하얀 벚꽃들이 한 폭에 담겨 오래 아른거렸다.



모모치 해변에서 저녁노을을 기다렸다. 후쿠오카 전망대에 올라 해가 지기를 한참 기다리면서 엄마와 나는 대화를 멈췄다. 한눈에 담긴 하늘과 바다 전체가, 옅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해 이내 불타는 듯이 변해가고, 시야가 천천히 어두워지는 걸 아무 생각 없이 잠잠히 보고 있었다. 해가 다 지고 완전히 깜깜해지고 나서야 발걸음을 뗐다. 뭐에 홀린 듯이 일몰을 보긴 처음이었다. 해가 진 모모치 해변에는 어린 학생들이 모래 위에서 해맑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새하얀 벚꽃에 저녁 빛이 물들어 분홍빛이 됐다. 분홍의 벚꽃은 3월 밤을 즐기는 사람들의 시끌한 웃음 사이로 밤새 넘실거렸다. 벚꽃나무 아래 삼삼오오 모여 각종 술과 야식으로 행복에 배부른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식물 같다. 식물처럼, 사람에게도 광합성이 꼭 필요하고, 이는 곧 행복지수와 직결된다 믿는다. 날이 풀려 사람들이 집 밖에 나와 바깥공기를 쐬고, 햇빛을 마주하는 시간들이 결국 내면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유독 테라스, 공원, 큰 창,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여행에서도 늘 많이 찾는다.



조식을 여유롭게 먹는 여행이 좋다. 료칸에서 온몸을 녹인 뒤 바로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나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만끽하는 조식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포만감이 가득했다. 가이세키 정식 특유의 소꿉놀이 같은 아기자기한 맛이나, 정갈한 그릇들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여행도 좋다. 잠깐 들렀다가는 여행자의 시선에서, 그곳에 오래 머문 사람들을 내 필름에 담는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면, 찍을땐 몰랐던 내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고요하고 느릿한 유후인의 정취와 함께 우리도 덩달아 느려졌다. 목소리를 크게 하지도, 많이 말하지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도시 속에 우리를 담그고 온전히 조용하게 즐겼다. 그래서 더 오랜 잔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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