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서핑캠프 일주일 체험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진짜 맞다.
양양에서조차 제대로 서핑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서퍼들의 성지 발리에서 7일 내내 파도를 탔다. 사실 파도를 ‘탔다’기 보다는 ‘체험’ 해봤다 정도가 적당할 거 같다. 서핑이 그렇게 위험한 익스트림 스포츠인지도, 근력이 아주 많이 필요한 스포츠인지도 전혀 모르고, “발리 가는데 서핑 해야지” 이 생각 하나로만 무작정 캠프를 신청했었다.
서핑을 해본 경험이 전무하니 가기 전 필요한 것들을 사는 데에만 돈이 꽤 들었다. 발리 서핑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동창 K가 콧잔등만 까맣게 타서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보들은 물에 많이 빠지니 선크림을 치덕치덕 발라도 금방 지워진다고. 아주 아주 강력한 선크림을 수시로 발라줘야 한다고. “너 나처럼 콧잔등만 타고 싶지 않으면 이거 꼭 사가”라며 K가 강력 추천해 준 서핑용 선크림도 사고. 서핑용 모자도 사고, 아쿠아슈즈에 워터레깅스, 래쉬가드... 서핑캠프 고작 일주일 가는 건데 가기 전부터 준비물 사느라 카드를 연신 긁어댄 나도 참 알 만했다. 열심히 뒤져서 겨우 사간 서핑모자는 서핑 하는 내내 한 번도 안 썼고(서핑할 때 시야를 가리고 걸리적거림), 아쿠아슈즈는 나 같은 비기너에겐 일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우연하게 고른 한인서핑캠프는 우리 같은 비기너에게 아주 최적화된 곳이었고 서핑의 첫 경험을 아주 즐겁게, 또 꽤 중독성 있게 남겨줬다.
서핑캠프에서의 일주일 일과는 매일이 비슷하게 반복됐다. 전날 저녁 스탭들의 공지를 보고 다음날 일어날 시간을 알게 된다. 대부분 새벽 5시 30분이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옷만 갈아입고 저벅저벅 보드를 가지러 간다. 묵직한 서핑보드를 머리에 이고 리쉬를 목에 감는다. 다 눈은 반쯤 감고 좀비들처럼 보드를 머리에 이고 있다. 서로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어둑어둑한 새벽, 차 위에 서핑보드를 차곡차곡 싣고 봉고차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서퍼들의 성지 꾸따 비치가 나온다.
차에서 내려 각자 보드를 머리에 다시 이고 해변으로 걸어가 보드를 깔개 삼아 위에 철푸덕 앉는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하면 어느덧 해가 떠 시야가 밝아져 있다. 스탭들은 멀찍이서 파도를 지켜 보면서 바람과 파도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고 비기너들이 어떤 스팟에 가면 좋을지, 누가 어느 포인트에서 파도를 탈 수 있을지 가늠을 한다. 현지 인스트럭터 1명 당 2명을 붙여주는데 그날 하루는 그렇게 2인 1조가 되어 2시간을 함께 바다 위에서 보낸다. 파도를 탄 경험, 레벨, 수영 가능 유무 등등을 고려해 파트너와 레벨이 결정된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지점을 화이트워시라고 부른다. 서핑 초보자들은 화이트워시에서 잘 일어나는 연습부터 한다. 서핑보드 위에 엎드려 있다가 파도가 오면 보드 위에서 일어나 균형을 잡는 순간을 ‘테이크오프’라고 하는데 서핑의 아주 기본이 되는 동작이자 제일 중요한 순간이다.
“서핑은 남한테 보여주는 스포츠라 탈 때 멋있어야 돼. 간지가 나야 된다는 말이야” 스탭들이 자주 한 말인데 허세스러운 말 같이 들리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스킬이 좋아도 자세가 어정쩡하면 하나도 안 멋있다. 테이크오프 역시 정확하고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간지가 나야 했는데 이게 참. 지상에서 할 때는 백 번이고 잘 되다가도 파도 위에만 가면 헐레벌떡 맘이 급해진다.
다행히 첫 날부터 잘 일어나서 3일 정도 화이트워시에서 연습을 하다가 4일째 되는 날 첫 라인업에 나갔다. ‘라인업’은 진짜 파도를 라이딩 하는 걸 말하는데 직접 파도를 잡을 순 없고 인스트럭터의 도움을 받아 파도를 탄다. 인스트럭터가 뒤에서 ‘지금’ ‘패들 지금’ 이라고 외치면 빠르게 패들링을 해서 일어나야 하는데 이때 운좋게 겨우 일어나 5~10초 정도 파도를 타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세상 존멋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 머리 끝까지 폭 빠지는데 가늠도 안 될만큼 물을 엄청 먹는다. 가끔 발이 안닿기도 하는데 발목에 감긴 리쉬를 더듬더듬 하면서 리쉬를 밧줄 삼아 보드 위로 올라온다. 보드 위를 낑낑거리며 엉거주춤 버둥버둥 겨우 올라오는 내 모습이 되게... 없어 보일 거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라인업에서는 이렇게 한번 파도를 타고 나면 다시 인스트럭터가 있는 깊은 지점까지 죽기살기로 패들링을 해서 가야 한다. 여기서 모든 체력을 다 쓴다. 나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파도는 반대방향으로 자꾸 밀려온다. 캐리비안베이 파도풀 정도로 훌렁훌렁한 세기가 아니라 내 무게와 서핑보드의 무게를 모두 뒤집어 버릴만큼 강력하고 무섭다. 따가운 소금물이 눈 코 귀를 다 쑤셔대고 발도 안닿고 시야도 안보이기 시작하면 패닉이 온다. 구명조끼도, 안전장치도 하나 없이 발목에 묶은 리쉬 하나에만 의존해서 파도 위에 내앉는다는게 말 그대로 ‘익스트림’ 하다.
나 같이 서핑을 처음 해본 사람들은 두세번만 타고 나면 바로 서핑의 실체를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정말 무섭고 위험한 스포츠라는 것을. 보드에 부딪혀서 피 나고 멍 드는 건 기본이고 갈비가 나가는 분도 봤다. 그래도 한국에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마라톤도 주기적으로 뛰고, 가끔 등산도 가고, 운동은 남들보다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왠걸. 양 어깨와 팔에 힘이 다 빠져서 패들링 하나도 낑낑 거리고 있는 내 팔뚝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면, 우리(나와 P) 빼고 다 파도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라인업에서 만나면 우리만 꼬라지가 가관이었다. 다들 보드 위에 여유롭게 앉아 서로 얘기도 하고 고개를 뒤로 한채 파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서로 신호를 보내며 “인” “아웃” “덤프” 같은... 암호 같은 말들을 한다(지금은 무슨 말인지 다 배웠다). 중간에 잘 쉬지도 않는다. 아, 쉴 때도 파도 얘기만 한다... 징글징글한 사람들.
그렇게 2시간을 파도 위에서 보내면 눈알까지 다 소금물에 젖고 탈진 상태가 된다. 사람 마음이 되게 웃긴게 진짜 졸X 힘든데(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다) 한번 더 타고 싶고 나가기 아쉽고 막 그렇다. 우리 돈으로 약 800원 정도 내면 야외사워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소금물에 찌들어 온몸에 달라붙은 레깅스와 래쉬가드를 겨우 벗어 소금을 툴툴 털어내고 젖은 몸에 타올을 대충 휘감는다. 다들 꼬라지는 장난 아니지만 뭐가 그리 재밌는지 또 파도 얘기로 실컷 수다를 떤다.
서핑이 끝나고 먹는 ‘짬뿌르’는 정말 천상의 맛이다. 일명 ‘개밥’이라고 불리는데 모래사장 위에 대충 천막 같은거 하나 쳐놓고 판다. 흰 쌀밥 위에 미고랭, 멸치볶음, 치킨, 야채, 칠리소스 등등 토핑을 얹어서 주는데 맨손으로 턱턱 얹어주기도 하고 설탕통 안에 벌이 기어다니기도 한다. 그냥 위생은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 몸에 타올 칭칭 휘감고 허겁지겁 먹는 짬뿌르 맛은 진짜.. 뭐랄까. 집 나와서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한 3일 굶다가 다 식은 삼각김밥 하나를 먹는 순간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아직도 생각하면 침이 고인다. 일주일 뒤엔가 우붓 레스토랑에 짬뿌르가 있길래 시켜 먹은 적이 있는데 너무 정갈하고 예쁘게 나와서 맛이 없었다. 짬뿌르는 개밥 처럼 먹는게 찐이다.
그렇게 개밥까지 해치우고 다같이 봉고차를 타고 다시 서핑캠프로 돌아오면 11시 정도 되는데 쉴 틈 없이 바로 그날의 리뷰와 지상훈련이 시작된다. 진짜 파도에 미친 징글징글한 사람들이다. 리뷰는 정말 생각보다 꼼꼼하고 체계적이여서 실력 향상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됐다. 다들 ‘공개처형’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스탭들 중 모래사장에 앉아 카메라 촬영을 하는 스탭이 몇몇 있었는데 신기하게 굉장히 먼 거리 같은데도 그날 서핑을 탄 사람들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다 담겼다. 한명 한명 라이딩을 보고 되감기를 하고 자세를 지적해 주고 잘 탄 라이딩은 서로 환호도 해주고. 작게나마 칭찬 하나 받으면 기분이 엄청 좋고 내일은 더 잘하고 싶고 막 그런 마음이 샘솟는다.
뭐 하나에 완전히 빠져서 몰두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해야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내 시간, 돈, 체력은 한정돼 있는데 그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무언가에 올인하고 매진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뭔가에 몰입하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인다.
서핑캠프 사장님은 처음부터 사장님이 아니였다. 우리처럼 발리에 놀러왔다가 좋아서 또 오고, 또 오다보니 이렇게 눌러앉게 됐다고.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발리로 떠나와 살고 있는 스탭들 역시 처음부터 발리에 산 건 아니다. 그들이 발리에 오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파도가 좋고 파도를 매일 타고 싶은데 한국 파도는 별로라서. 그래서 발리를 택했다고. 그냥 파도에 미쳐서 파도만 보고 발리에 온 거다.
“가끔 사람들 라이딩을 보다보면, 아 저 사람 파도 맛에 중독될 거 같다, 하는 사람들이 몇명 보이는데. 그러면 우리끼리 뒤에서 말해요. 아 저 사람 X됐네 라고요. 곧 회사 때려치고 발리 올 것 같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스탭들이 말한다. 파도에 중독되면 그냥 답도 없다고. 회사고 뭐고 때려치고 파도 찾아 온다고.
그렇게 발리에 와서 일년 반 동안 매일 파도를 탄 스탭 S는 누가봐도 너무 간지나게 파도를 타는데,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는 파도 탈 때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그도 처음부터 잘 탄건 아니였겠지, 생각하면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몰입감이라는 게 무서운 거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캠프 사람들은 수시로 파도 탈 궁리를 한다. 대부분 회사원들인데 금요일 퇴근하고 토요일 새벽 파도를 타러 가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다. 파도 앱으로 지역별 파도를 체크하고 바람 세기를 확인하고, 이번주 파도가 좋으면 이번주에 파도 타러 가자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 이렇게 인사한다.
“라인업에서 만나”
노을 지는 꾸따비치, 짱구비치에서 지는 해를 뒤로 하고 파도를 타는 서퍼들을 보며 생각했다. 파도 위에서 보는 일몰은 어떤 감흥일까. 나도 언젠간 선셋 서핑을 꼭 하리라.
열심히 근력을 키우고 몸을 더 건강하고 예쁘게 만들어 파도 위에서 파도를 갖고 놀 날을 꿈꾼다.
내년 4월 발리에서 또 만나요. 라인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