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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역 Dec 30. 2019

힙을 찾아서

불편함을 쫓는 감성

요즘 자주 가는 을지로 (일명 힙지로)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옛날부터 이런 데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건가, 아니면 요즘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가?

을지로 핫한 카페나 맛집은 대부분 눈에 띄는 간판이 없어 불친절하고, 가는 길이 아주 좁고 어두우며(철물점 같은 건물 2, 3층이나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실내는 노출 콘크리트 벽, 그리고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의자들(공사판에서 주워온 것 같은 벽돌이나 우유박스, 오래된 철제 통 같은 것들을 의자로 쓰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 시대 때 썼을 법한 촌스러운 무늬의 카펫이나 커튼, 까만 소파, 낡아빠진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 그리고 오래된 욕조나 신발장 같은 게 카페 한가운데 뜬금 없이 놓여져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처럼.



을지로 노포나 만선호프 같은 가게들이 핫하게 뜬 것도 불과 얼마 안되지 않았나. 을지로 노포들도 참 불편한 것들이 많다. 오래 앉으면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오는 딱딱한 포장마차 의자에, 카드결제도 안되고, 야외라 여름에는 벌레도 잘 물리고. 옛날에는 아저씨들이나 가는 데라고 생각하던 이런 허름하고 낡은 곳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젊음의 활기를 느끼는 요즘 사람들의 감성 변화가 신기하다.



이런 취향을 오랫동안 즐기고 향유해온 사람들은 이 트렌드가 갑자기 뜬 게 오히려 불편할 지 모르겠다. 방해 받지 않던 공간을 갑자기 누군가에게 침범 받은 느낌일수도.

누군가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유행의 이유를.
그리고 이런 불편한 것들이 트렌드가 될 줄 누군가는 먼저 알았을까.


아 아니다. 정확하게는,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누군가(들) 이런 취향을 트렌드로 만든 것이겠지.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자연광이 통째로 드는 큰 창, 새하얀 벽에 군더더기 없는 흰 테이블, 꽃이나 식물들로 꾸며진 인테리어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감성 카페’로 인기가 있었지(물론 요즘도).

예쁜 것보다 불편하고 오래된 것들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이런 것들을 ‘힙’ 하다고 부르는 요즘. 나 또한 이런 공간에 종종 오게 되면 ‘불편하다’기 보다는 ‘재밌다’, ‘특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제는 을지로의 한 유명한 카페에 갔다. 거기도 이런 요즘 ‘힙’함의 감성을 모두 가진 카페였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대충 달아 놓은 것 같은 하얀 커튼, 어둑한 조명에 곳곳에 빈티지 소품들. 끊임 없이 손님들이 들어와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일단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카페를 웨이팅까지 하면서 방문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두번째는 오는 손님들의 나이가 너무 다 어려 보여서 놀랐다.

옛날 동네다방 같은 곳들이 이제는 ‘힙’함의 장소가 되고 나를 포함해 요즘 트렌드를 쫓는 친구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 됐다.


나는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힙함과 이미 짜여진 트렌드를 쫓아가는 ‘트렌드 팔로워’로서 다음 ‘힙’함은 또 뭐가 될지, 누군가가 또 어떤 ‘힙’함의 트렌드를 만들어 낼 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뿐이다. 이런 트렌드를 만들고 전파하는 그 누군가가 멋지고 존경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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