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역 Jan 05. 2019

위스키 몇잔과 별별 사람들

Meet with Whisky

우연한 기회에 간 위스키 클래스였고, 단 4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새로운 자극이고 강렬한 기억이다.


홍대입구역 거주지 근방의 작은 오피스텔 원룸 크기 정도 되는 공간에서, 호스트 분이 위스키 클래스, 샹그리아 클래스, 백주 클래스 같은 것을 수시로 열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사교를 한다.


그 날 모인 12명의 사람들은 모두 위스키를 좋아하거나, 위스키를 모르는 데 알고 싶거나, 다양한 위스키를 먹어보고 싶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위스키’ 때문에 평일 퇴근 후 일부러 홍대까지 발걸음을 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맥주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몸에 알콜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0에 수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와인 한잔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근사한 음악을 들을때나, 좋은 공간에 있을 때, 그와 잘 어울리는 술을 곁들이면 그 순간을 몇 배 더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여서다.


'술'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해서 술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곱창을 먹을 땐 소주, 피자를 먹을 땐 맥주' 와 같이 어떤 음식과 곁들이는 하나의 취향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가장 후자에 속하는데, 술을 잘 마시든, 못 마시든, 얼마나 마시든, 술을 그저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는 부류다. 특히 '음악'이나 '음식'을 더 풍성하게, 맛있게, 즐겁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고,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이자 취향이라 생각한다.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 게 하나의 취미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 아티스트나 특정 장르에 꽂히면 관련 연주곡이나 여러 버전의 편곡 커버까지 다 찾아보는 편이다. 특히 피아노, 드럼, 베이스로 이뤄진 재즈트리오 연주곡에 꽂힌지 꽤 오래 됐는데 연주곡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소나 분위기 같은 게 자연스레 머릿 속으로 연상이 되고 그럴 때마다 늘 배경처럼 있는 게 와인잔, 샷잔 같은 것들이니, 나에게 술은 음악이나 음식과 함께 곁들이는 하나의 문화 같은 거다.




위스키라는 주제 말고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12명의 사람들이 직사각형 모양 기다란 테이블 하나에 둘러 앉았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고 그날 마실 4종류의 위스키를 구경하고, 호스트 분이 셋팅해준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 중엔 나처럼 위스키를 경험해 보고 싶어 온 사람도 있는 반면, '저는 술을 정말로, 정말로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싱글몰트 위스키바를 찾아다니는 게 취미인 사람도 있었고, 저마다 다른 이유에서든 각자의 소중한 평일 저녁 시간을 내어 위스키라는 취향과 문화를 배우고 공유하고 싶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위스키의 기초, 이를테면 기본적인 구분이나 증류방식, 원산지 같은, 간략한 이론 설명을 들은 후 시음이 이어졌다. 그날 시음한 위스키는 발렌타인, 맥캘란, 글렌피딕, 탈리스커 총 4개다. 하나씩 시음을 한 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느낌을 나눴다. 정말 아무런 틀도, 형식도 없는, 폭발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 짝사랑했던 애가 떠오른다, 섹시하지만 내가 갖고 싶진 않은 이병헌 같다, 자극적이고 혀가 아리는 엽떡 매운맛 같다, 강렬한 이태원 같다,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한 탁 트인 바다 같다.”


셰리 와인을 담았던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는 맥캘란은, 와인을 마실 때 나는 특유의 와인향 같은게 느껴져 나한테는 제일 부드럽고 달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했던 글렌피딕은 ‘사슴계곡’이라는 이름답게 병에 그려진 사슴 뿔이 특징인데, 이름에서 다가오는 순하고 얌전한 느낌과는 다르게 아주 뜨겁고 독했다. ‘경사진 암벽’, ‘돌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탈리스커는 이름만큼이나 거칠고, 파괴적이고, 마초 같았다.


똑같이 한 모금을 마셔도 각자에게 느껴지는 향과 맛이 다 다른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이는 내가 제일 맛있다고 느낀 술을 제일 쓰다 평가했고, 어떤 이는 가장 독한 술을 가장 달다 했다. 각자 다르게 떠올리는 기억과 사람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분출하는 그 시간이, 그 동안 모르고 살았거나 잊고 살았을지 모르는 내 새로운 감각기관들을 마구 자극하는 것 같았다. 앞에 앉은 사람의 나이가 몇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당연하게 서로 묻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은채 오로지 ‘위스키’ 라는 주제로만 끊임없이 얘기하고 감상을 나누던 그 시간이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신선한 자극들이 있다. 그 중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와서 이 사람의 모든 것들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나와 꽤 공통된 부분을 가져서 처음부터 잘 통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날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 호스트 분은 가지런한 치열과 웃을 때 입 모양이 너무 매력적인 분이었는데, 미국과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답답한 회사문화가 싫어 퇴사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분이었다. 수시로 여는 위스키 클래스나 샹그리아 클래스 같은 것들도 그 중 하나일거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은 채 오로지 혼자서 꾸리고, 만드는 삶을 이어간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삶 속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초대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파티문화를 만든다는 게 대단하고, 멋있다 생각했다.


위스키 몇 잔에 별별 사람들까지 만나 즐거웠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저런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자리들은 그게 좋은 경험이든 안좋은 경험이든 늘 새로운 자극이 된다. 강렬한 위스키만큼이나 진한 기억으로 남은 날이었다.




이전 12화 일회용의 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