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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Dec 11. 2019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 아무튼, 잡지

2019 독서 연말정산, 3월의 책

올해도 얼마 남지않은 시점에서, 슬슬 '연말정산 꿀팁' 같은 콘텐츠들이 종종 보이곤한다. 퇴사를 해서, 당장 13월의 보너스 같은건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머리아픈 지출내역 대신, 올해 읽은 책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이름하여 <2019  독서 연말정산>. 연기대상 같은 시상식 컨셉은 어떨까 했지만, 아무래도 좋아하는것들에 순위를 매기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2019 독서 연말정산

3월의 책 : 아무튼, 잡지 - 황효진


"그게 꼭 있어야돼?" 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왜 기본만 챙기면서 살아가야 할까.

반드시 필요한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미세먼지 가득했던 3월 초, 친구와 함께 휴가를 맞춰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어딜가든 독립서점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는 나는, 여행의 중간중간에 독립서점과 소품점들을 끼워넣었다.



독립서점들은 대부분 도대체 왜 여기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자리해있다. 하지만 조용하고 인적드문 길을 따라서 걷다보면, 찾아가는 과정부터가 독립서점 방문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독립 서점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고, 그중 한곳이었던 만춘서점에서 <아무튼, 잡지> 를 만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출근길에 호로록 다 읽어버렸다. 잠깐의 여유가 되어준 고마운 책.


'아무튼' 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이다.

많은 시리즈 중, 잡지 편을 골라든건 표지문구 때문이었다

반드시 필요한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조금  제대로 살아갈  있다'



작가는 취미를 묻는 질문에, "잡지 읽는거" 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잡지하면 미용실에서 머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집어들고, 이내 덮어버리곤 하는 걸 떠올린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잡지의 매력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잡지는 보는 이를 가르치려 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태도로 

슬쩍 말을 건넬 뿐이다.

'이거 어때?'  -13p



80년대생인 작가의 일상에는 항상 잡지가 함께했다.

오가는 곳이라곤 학교와 집 뿐이었던 초등학생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나나>, <윙크> 같은 순정만화 잡지는 가슴떨리는 이벤트였다.


십대가 되어서는 <주니어>, <틴스타> 같은 아이돌 잡지를 읽으며 친구들과 서로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잘라서 교환하는 추억들을 쌓았다.


어라, 생각해보니 나도 초등학생 때  <미스터케이>, <와와 일공구> 잡지에서 과자나 햄버거같이 온갖 모양의 입체 편선지들을 자르고 붙였던 기억이 났다. 쓰지도 않을 편지지를 만드는게 왜그리도 재미있었던건지.


이렇다할 교훈을 남기지도, 인생을 바꿀만한 한문장을 남기지도 않는, 하지만 그때그때의 재미를 담아 '와글와글' 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는  잡지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인사이트 <응답하라 2002 제작된다면 면 꼭 나와야하는 추억템>


한 때  '최신유행' 의 메카였던 잡지가 초단위로 올라오는 SNS 콘텐츠의 속도를 따라가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책에선 요즘의 사람들이 잡지를 읽는 이유를  ‘여유로운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라고 이라고 말한다.

맛집을 가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모든 여유를 다 부린 후에도 남은 시간이 있다면,

드디어 차례가 돌아오는 그런것.



"잡지에 미래는 있는가?

...여전히 뭐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 89p



콘텐츠 홍수속에 잡지를 만든다는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단순히 좋은 것과, 수익을   있는건 분명이 다른 영역의 것이기에, 수많은 잡지가 폐간되었고, 잡지사들은 여기저기 인수되며 기자들은 수익 압박을 버텨야만 했다.


작가의 직장선배가 퇴사하기 전 했던 말들에서, 나도 덩달아 눈물이 찔끔 났다.


"잡지는 안되나봐. 우리가 안되는걸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봐. 진작에 포기했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안되는 거였는데.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107p


잡지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잡지 인터뷰나 촬영을 하더라도 인터뷰이에게 페이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타인의 쓰임에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 환경이 점점 더 악화되는것을 지켜보던 작가는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업계에 몸담았던 지인들과 함께 <일하는여자들>, <여성생활> 이라는 잡지를 냈다.


이게 바로 완벽한 덕업일치.


구독중인 감성매거진 <히치하이커> 에 실린 <아무튼, 잡지> 의 한구절. 무척 반가웠다.


종종 쓸데없는걸 보러가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작은것들을 사들고 오는 나에게, '그런 걸로도 삶이 풍부해질 수 있다' 라는 정당성을 부여해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3월의 책 <아무튼, 문구>.




"너무나 사소한 정보를 읽어내려가면서,

잡지를 보는 동안 내 방식대로 시간을 실컷 낭비하는 기분으로 안도하면서,

손 안에 쥔 돈으로는 당장 가질 수 없지만 아름답고 견고한 질 좋은 물건들을 보면서,

아주아주, 정말 아주아주 조금씩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런 감각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라는것,

그래서 잡지 읽기야말로 취미에 꼭 알맞은 일이라는것을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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