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감정적인 사람

by 서우

그 뒤로 나의 관심사는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다.


나란 사람을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집-학교-집-학교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무력감이라는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부터인가, 나는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열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에 교양 수업으로 철학 수업을 하나 등록했다. 인간과 철학, 인간과 영혼 그리고 육체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를 탐구해 보면서 기말고사 리포트를 제출하면 끝인 수업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난해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멍하니 주제를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와서 리포트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우고.

"나는 복잡한 사람이다."

또 지우고.

"나는..."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을 보다가 그냥 컴퓨터를 껐다.

첫마디를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

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어이없으면서도 부끄러웠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배우면서도 정작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내가 스스로 되물으면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만 답했다.

철학 교양 팀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그건 어울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울려야 해서' 어울리는 거였다. 점심을 함께 먹고, 프로젝트를 위해 같이 모여서 고민하고.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제가 자료 조사하고 문서 정리할게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서 다른 역할들은 피해 갔다. 할 수 있는 리서치와 문서 작업만 딱 해서 던져주고, 나머지는 팀원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았다. 그냥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최소한의 취지에서만 행동했다.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처음엔 과제를 하려고, 혹은 뭔가 의미 있는 자료를 찾으려고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네이버 메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고, 관련 기사들을 읽다가 댓글을 보고, 또 다른 링크를 타고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밤, 또다시 무의미한 웹서핑을 하다가 문득 브라우저 창을 내려다봤다. 수십 개의 탭들이 열려있었고,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탐구는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일상은 이미 의미 없는 루틴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때가 온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며칠 뒤, 평소처럼 멍 때리면서 과제 관련 웹서핑을 하다가 어떤 블로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실존적 고민'이라는 제목이었다. 클릭해서 읽어보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글에서 사르트르를 언급했는데, 이름은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왠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 대학교 도서관을 들렀다.


도서관 창문 밖의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떨며 웃고 있었다. 같은 동아리 부원 사람들인 듯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저 친구들은 뭘 그렇게 확신하며 살아갈까.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져서 목적 없이 살아가는 이 삶 속에서 어떤 재미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걸까 생각하면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도 저런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었으면... 그래서 철학 코너로 발걸음이 향한 걸까.


서적을 둘러보다가,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사르트르의 책 <존재와 무> 번역판이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문장을 노트에다 적고, 밑줄을 그었다.

사람은 다른 사물과는 달리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새삼 자유라는 게 이렇게 무거운 거였구나.


내가 나를 못 내려놓고 있었구나.

내가 생각한 기대치에,

나를 맞춰두고 있었고 그 기대치에

스스로가 갉아먹히고 있었구나.


내가 정한 기대치를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을 피해왔고,

그렇기에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해답을 내리는 것을 피하고 있었구나.


'합리적'이라는 가정도 그렇다. 기존의 합리성이나 이성의 개념으로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에게 비합리성 이외에도 추구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을 학계에서도 받아들이고 있었고 ‘감정’은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않은가.


나는 고민하다가, 문장 하나를 적었다.

“나는 합리적이지 않다.”

하나씩 적으면서.

인정하기 싫었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뒤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나는 경험을 느끼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내린 방향성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었다.


나라는 그릇에, 어떤 경험과 ‘감정’이 다가올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차차 알아가기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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