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불안이라는 감정(1)

by 서우

어느 주말, 박찬욱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봤다.


제지업계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재직자 만수가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휴일 어느 날 영화관에서 만수가 해고를 당하고 가정과 자신이 가꾸는 삶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해고와 실직자가 겪을 고통에 대해서 곱씹어보았다.


아직 회사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나도 저만한 고통과 어려움을 미래에 느끼게 되지 않을까 경계한다. 그리고 내가 기억 뒤편에 묻어두었던 감정 하나를 불러일으켰다.


불안감.


내가 회사에 취직하기 전까지, 취업 준비생으로서 삶의 방향성과 미래가 전혀 보이지가 않았던 그 불안감.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인 만수는 원래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버려진다는 박탈감에서 나온 불안함이었다면, 나는 내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결이 다른 불안감이었다.


작중 만수는 이미 지킬 가정이라도 있지만,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될 출발선에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데 나아가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 서럽고 두려웠다. 곧 잘릴 직장이라고 해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주변에 친구들은 이미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는데 나만 뒤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밀리고 있다는 불안감도 불안감인데, 나를 더 크게 옥죄었던 것은 내가 전하고 비교했을 때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게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1년 반 정도의 취업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준비기간 동안 나의 마음은 천천히 병들었다. 최종면접까지 올라가다가 연거푸 탈락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애꿎은 집 대문을 발로 찼던 기억들.


내가 원하던 기업에 입사를 하면서 그 불안감은 사라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불안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이 스쳐 지나가면 머리털이 쭈뼛쭈뼛 선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스크롤을 내렸다. <‘청년백수’ 120만 명 시대>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밟힌다.


2025년 ‘쉬었음 청년’도 어느덧 50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20~29세 대한민국 인구가 약 600만 명임을 생각하면 약 10% 정도가 취업이나 준비 없이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내가 구직할 시점에는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나도 경기가 좋았던 적당한 시점에 회사를 구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런 고통을 느낄 청년들이 바로 나일 수 있겠다 싶었다.


세월이 벌써 많이 흘러 이제는 그런 선명했던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내 삶도 안정을 찾아갔다. 회사에서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온다. 하지만 영화 속의 만수가 계속 외치는 듯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그 다섯 글자가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인 만수가 외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만약에 내가 그때 회사를 취업하지 못했다면, 나도 저렇게 ‘어쩔 수가 없다’라고 절망하고 내 삶에 대해 굳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좁디좁고 더러운 원룸 하나에 내 몸을 유기시켜버려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안주하고 있는 걸까.


"어쩔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예전의 불안이라는 감정을 덮어두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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