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는 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셨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똑똑하고 잘났으면 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더 섬세했으면 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튼튼했으면 하는 마음.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그 가지지 못했다는 것의 잣대를 어머니 주변을 기준으로 들이 밀어 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한테도 빌어먹을 집안이라고 외쳤던 것도 다른 친구들 남편들보다 벌이가 적고, 다른 친구들 남편들보다 덜 섬세하고 투박한 그 모습에서 나왔던 것이었겠죠.
솔직히 그랬어야 했나 싶습니다.
저한테 ‘다 널 위해서 말하는 거야’라고 포장하셨던 어머니의 그 말속에서 ‘나’는 독립적으로 인정받고, 생각을 존중받는 ‘나’가 아니라 어머니의 생각대로 의도대로 움직이는 '나'였으니까요.
그렇게 행동하기 싫었고,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계모 같은 사람이라고.
저도 가시가 돋은 말들을 뱉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어렸던 저에게 다시 주워 담지 못할 비난들을 뱉어냈다는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걸 너무 늦게 말하신 어머니한테 정말 원망 많이 했습니다만...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 두 개를 더 주는 것이 아니라,
10개 중 9개를 줘도 1개를 못 줘서 아쉬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저도 나이가 들면서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저희가 조금 더 다정한 어머니, 자식으로 지낼 수 있었을까요?
납골당 침묵 속에 어머니가 저에게 전해주려고 했지만, 표현이 섬세하지 못했고 제가 이해하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사랑' 두 글자에 대해서 곱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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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셨습니다.
아버지는 훌륭한 선배님이자 어른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아빠'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랑 싸우고 나서 대화하지 않고,
가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평소에 집에 계셨을 때에는 저와 어머니한테 무관심하면서 책과 휴대폰, 그리고 노트북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납니다.
일 때문이라고 하셨죠.
압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훌륭한 직원으로서 고과도 챙겨 받고,
직장 동료들의 지지도 받고 그래서 높은 자리끼지 갈 수 있으셨겠죠.
하지만 어린 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어디 놀러 간 기억이 손에 꼽습니다. 진심으로 우리 가족을 위해 행동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었습니다.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린 시점에서 다 늙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이 기억납니다. 아버지와 추억이 적게 남은 것이 가슴이 너무 아립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저한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자세가 아니었나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책임'을 되짚어봅니다.
아버지가 짐에 이고 있었던 책임이 '좋은 직장상사, 무관심한 아빠'에 대한 대가라면...
저는 세상과 제 주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해 봤자,
속으로 원망해 봤자,
속으로 후회해 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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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간 시간이라고,
하얀색 유골용기들이 덤덤히 내 주름진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