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호랑이 등뼈를 누비기 전에...
동해바다. 독도와 울릉도 다음으로 바다 위로 해 뜨는 것을 빨리 볼 수 있는 곳. 바다 왼쪽으로는 거대한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강산의 조화가 일품이다. 워낙 절경지가 많아서 그런지 도시와 직장생활에 지쳤을 때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면 내안의 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저 멀리 날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해안을 돌아다니기 전, 여행사 일을 하면서 동남아 나라들을 다녀오고, 독일에서 유학을 하면서 유럽 여러나라를 다녀오고, 이후에는 필리핀에서 2년 요르단에서 1년이라는 남부럽지 않은 해외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내가 실수한 것은 외국에 있으면서 내가 돌아다녔던 곳에 대해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해외에서 공부와 직장생활을 해서 그렇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글로 생생한 기억을 자세히 남기지 못했다는 나 자신의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요르단에서 돌아와서는 돈 모은 것으로 다른 나라를 가서 제대로 여행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지구로 퍼져 나갔다. 그래도 금방 진정되어서 해외를 나가 나만의 글을 쓸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는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해외여행이 다시 재개되는 건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계획이 틀어져 좌절이 나를 지배하려고 했을 때, 철도와 관련된 뉴스를 봤다. 2022년 12월 부산은 경부선 뿐만 아니라 동해선, 중앙선, 경전선-남해선의 시종착역이 된다고. 그러고 보니 새로 놓이는 철도들은 비즈니스 출장객들이 주가 되는 경부선과 달리 우리나라 유명관광지를 지나가는 것이다. 동해선하면 강원도 석호, 관동팔경, 해변의 커피거리들과 우리나라 경제를 견인했던 포항제철과 울산을 지난다. 중앙선하면 강원도 관찰사가 기거했던 원주,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단양8경과 조선 유교의 역사가 깃든 안동, 영주,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조문국의 역사를 간직한 의성 등을 지난다. 우리나라의 관광지라... 그렇다. 해외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 관광지에 대해서는 가까이 있다는 있다는 이유로 내가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성했다.
뉴스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일단 외국에서 생활했으니까 우리나라의 관광지를 상세히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해서 관광통역안내사(영어)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안내사 1차 필기시험을 무난하게 합격하고 나서는 관광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면 내 역사 지식을 다시 재정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사능력시험을 공부했고 결국 1급을 땄다. 이후 관광통역안내사와 국내여행안내사 최종면접시험도 합격해서 관광 가이드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췄다.
관광통역안내사와 국내여행안내사 자격을 얻고 나니, 다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곰곰히 고민한 결과 동해안 시군 지자체의 주요 역사관광지를 관람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우리가 유럽 중세 고성을 보면 그 고성의 역사를 알고 남들에게 내가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나는 동해안 지역부터 우리나라 고건축물과 역사흔적이 있는 곳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해안은 선사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 관동팔경과 현대 어부들이 현대 동해 수산업을 개척한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스토리텔링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여 채택하였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는 어느 정도 인구가 있는 포항-경주-울산-부산 루트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다. 오히려 서울에서 출발하는 영동고속도로와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할 정도니까. 하지만 통일신라 시대에는 경주가 중심지였기에 동해안 도로는 당시 국토의 대동맥과 같았다. 신라 화랑들이 동해안으로 여행갔다는 역사와 전설들이 전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발해 사신들이 드나드는 신라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지만 통일이 되면 옛 신라도처럼 부산-러시아 극동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 국제도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도로 뿐만 아니라 최고 속도 250km를 버틸 수 있는 철도로 설계된 동해선이 2023년부터 강원도와 대구와 경상동해안 지역과 거리를 더욱 줄여준다(대구에서는 포항경유로 갈 수 있다.). 특히 강원도 관광은 교통이 좀 더 편한 수도권 사람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같은 경상도 사람도 수도권 사람들처럼 당일 또는 1박 2일로 강릉 안목카페거리, 동해 묵호항 돌담길과 촛대바위를 좀 더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물론 강원도 사람들도 울진 성류굴, 영덕 대게, 포항운하 크루즈, 천년고도 경주와 벚꽃날 울산 태화강을 이전보다 쉽게 갈 수 있다.
동해안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어디에 초점을 맞출까라는 고민도 해봤다. 맛집을 할까? 트렌드 따라 요즘 뜨고 있는 여행지를 해볼까? 나는 이전부터 관심을 가진 지역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관광업에서는 몇 년 동안 일했지만 지역 역사와 문화재는 내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사실 새로운 일이다. 하지만 주요 석학들이 저술한 주요 관광지 내용을 숙지하고, 내 고향 부산을 떠나 울산광역시에서 시작해서 통일전망대가 있는 강원도 고성까지 가는 방향으로 글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관광이라는 말은 주역 풍지관(風地觀) 육사(六四)에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支光 利用賓于王)'에서 비롯되었다. 해석하면 '나라의 빛남을 봄이니, 왕에게 벼슬하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역사와 문화재 공부를 하기에는 요원한 나지만, 적어도 지역의 빛남이 무엇인지를 보는 마음으로 울산광역시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깊이 있게 본 소감을 독자들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관광이 아닐까 싶다. 각 고장들의 빛을 보기 위하여 한반도 호랑이 등뼈로 나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