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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Jul 27. 2020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의 세상을 좁히는 마법 같은 말


언젠가 친구에게 긴 통학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친구가 원래 책을 좋아하니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 친구 말마따나 책이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거고, 또 독서라면 시간을 가치 있게 채우는 무언가가 될 수 있으니 충분히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평소 독서 신념이 '한 번 핀 책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접지 않는다.'였던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원래 그래 왔던 것처럼 그 긴 시간을 낭비만 하며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의자에 기대 책장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책이 대체 몇 권이지?'


정말 읽고 싶었던 책들에 먼지만 쌓여가는 걸 보며 기분이 기묘해졌다. 제대로 읽겠다는 명목 하에 단 한 줄도 읽지 못한 책들이 책장에 빼곡했고, 그렇게 결국 완독 한 책이 몇 권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서 곧장 눈에 보이는 것들 중 한 권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내 할 일이 생겨 독서를 그만둬야 했고 처음으로 중간에 책을 접게 되었다. 스스로 정한 원칙은 좀 꺾였을지 몰라도 크게 잃을 건 없었다. 오히려 서른 장의 글들이 마음속에 기억될 뿐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다'는 말은 스스로의 세상을 좁게 만든다. 로맨스는 '원래' 즐겨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영화는 인생 최고의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으며, 그림에는 '원래' 재능이 없단 이유로 내려놓았던 펜은 내가 바라던 행복을 그려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인 신념, 취향, 원칙들이 도리어 내 세상에 한계를 만든 건 아닌지 늘 경계하며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보다 다채로운 인생을 꾸며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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