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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북 Dec 20. 2023

자유는 어떻게 즐기면 되나요

자유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내년 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곧 찾아오는 겨울 방학까지 감안하면 정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비해 할 일들은 여전히 많다. 학년말 업무가 아직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생기부 업무까지. 게다가 내년 업무 지원이 불가능하니 평소보다 업무 인수인계 준비도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 조만간 자유가 주어진다니.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런 것처럼 여태까지 나 또한 자유라고 해봤자 주말이나 휴가뿐이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부족한 잠을 자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제대로 누려본 적이 손에 꼽았다.


실제로 나는 막상 내년 휴직의 구체적인 계획을 쉽게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왜 계획을 못 세우고 있는지에 대해. 휴직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마음에 드는 일이 없어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 시간이 있다고 해서 차분하게 앉아 1년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요’였다. 휴직을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어색하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나는 이맘때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의 업무를 내정받아 준비했다. 그러니까 해야 하는 일의 바다에 빠져 수영도 아닌 물장구를 쳐대는 시기였다. 살아남기 위해 항상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강의들을 들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방법들과 다이어리와 노트를 동원해 간신히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했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라니 너무 과분하다.


“일 년 금방 가. 할 일들을 미리 정해놓고 하나씩 해나가는 시간을 가져.”


내년에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들은 한 부장님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듣고 나니 맞는 말씀이다. 부장님 말씀이 끝나자 종이에 하고 싶은 일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쉬는 것마저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내기로 했다. 이 막연함을 가친 채로 휴직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휴직을 준비하며]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다. 우선, 하루빨리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완치하고 싶다. 또, 당일치기 여행도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나고 싶고, 초등학교 때 그만둔 피아노도 연주해보고 싶고, 이제 막 시작한 프로그래밍 공부도 잘하고 싶다. 아프고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사람 없는 카페에 앉아 글도 쓰고 싶고, 수다도 떨고 싶다. 다이어트도 하고 싶은 반면, 평일에 맛집 탐방도 마음껏 쇼핑도 해보고 싶다...


잠깐 생각한 것만 이 정도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쭉쭉 써내려 가진다. 반대로 평소의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에 반성마저 들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구나. 실제로 나는 ‘나’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울증과 번아웃도, 공황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그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의 더미에 파묻혀 그 틈새로 숨만 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늘 자유로운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쌓아놓은, 해야 한다는 일들에 가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나는 자유만을 갈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 곧 자유의 물결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칠 것이다. 파도에 휩쓸려 정신없이 헤맬지, 서퍼가 되어 유유히 파도를 탈지는 나에게 달렸다. 후회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정면으로 맞이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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