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북 Dec 30. 2023

눈썰매를 타던 기억, 있으신가요.

추억은 추억을 만든다.

정말 수북이 눈이 내렸다. 일어나서 커튼을 열었다가 하얀 온 세상에 금방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솔직한 현실을 말하자면 나는 눈 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쌓여있는 눈들이 녹아 시커먼 물이 되어 고여 있는 것을 본다. 추워지면 길이 얼려나, 세차를 언제 해야 하더라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차장 밖으로 본 나무들 사이로 아이가 썰매를 타고 지나간다. 평지에서 썰매라니. 이 신기한 광경에 자세히 쳐다보니 눈썰매를 끄는 아빠(로 추정되는 분)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보고 있던 건 열심히 노동으로 움직이는 인간 눈썰매였던 셈이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최고의 놀이를 즐기는 듯 행복한 웃음이 가득이다. 그제야 어릴 때의 나도 눈놀이를 즐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누구나 눈싸움이나, 눈사람 만들기 같은 눈놀이를 즐기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 또한 눈이 펑펑 오는 날이면 굉장히 들떠서 밖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엄마가 돌돌 감아주는 목도리가 얼른 묶이길 기다리며 발을 굴렀더란다. 손으로 떨어진 함박눈 결정이 손에서 스르르 녹는 그 광경이 신기했다. 동네 친구들이 모두 나와있는 날이면 눈싸움을 즐겼고, 큰 눈사람을 만들겠다며 맨 손으로 차가운 눈을 잔뜩 들고 와 만들어놓은 눈덩이에 두덕두덕 쌓아 크기를 키우길 반복한 날도 있었다. 당연히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다 못해 빨갛게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즐거웠다.


시골 할머니 댁은 언덕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아마도 아빠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그 자리에 항상 있었겠지. 설을 맞이하러 할머니댁을 간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새하얀 눈이 때묻지 않고 소복하게 쌓여있는 게 보였다. 어린 나는 쌓인 눈을 맨 먼저 뽀득거리며 발자국을 만드는 걸 즐겼다. 한참을 마당에서 동생과 놀고 있을 때, 아빠가 마당 한 구석에서 커다란 포대 자루를 들고 나타나셨다. 발자국 만들기를 즐기던 우리는 아빠의 재촉에 못 이겨 함께 언덕을 올랐다. 그리고 아빠에게 포대로 타는 상당히 옛날 방식의 눈썰매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도 시큰둥한 게 사실이었다. 이건 하나도 눈썰매같이 생기지 않았다고, 재미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설득에 한 번만 타보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건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는 눈썰매였다. 눈썰매장처럼 다른 사람과 부딪힐 걱정도 없고 내려가고 올라오기에 적당한 높이와 경사였던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언덕을 올라 계속 눈썰매를 탔다. 비닐 포대였지만 나중에는 나름대로 방향 조절도 할 수 있게 될 정도였다. 너무 한쪽 방향으로 힘을 주면 비닐 포대 눈썰매를 잡은 채로 옆으로 누워버리곤 했었는데, 그러면 둘이서 그 또한 재미있다고 꺄르르 웃었다. 눈이 썰매에 눌리고 쓸려 녹아 군데군데 사라지는 순간까지 나와 동생은 멈추지 않았다. 어린 아빠가 놀았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이것은 눈썰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고 소중한 기억. 수없이 갔던 눈썰매장보다도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런 작은 추억들을 쌓으며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추억을 다시 미래의 아이들과 공유해 나가겠지. 오늘 내린 눈을 바라보면서 어른의 내가 아닌 아이 시절의 나를 느껴본다. 아빠도 신나게 눈썰매를 타는 우리를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겹쳐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