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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May 28. 2023

개떡 같은 김치전

*사진출처:  픽사베이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올해 들어서 연휴에는 왜 이리 비가 자주 오는지. 하여튼 밖에 나갈 생각은 못하고 집에서 뒹글뒹글 쉬고 있다가 아침, 점심을 대충 먹었기에 저녁 메뉴를 뭘로 먹을까 고민하다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저녁에는 뭘 먹을까?"

"아침에 오징어 냉장실에 내놓았어. 김치전에 오징어 넣자."

"김치전?"

냉장고 문을 열고 보니 오징어가 총 3마리나 있었다.

"3마리 다 넣을까?"

"2마리만 넣던지. 좀 많은 듯한데.."

"아니야, 이왕 하는 거 3마리 다 넣지 뭐. 다시 오징어를 얼리기도 좀 그렇고. 오징어 많이 넣으면 더 맛있겠지."

우선 해동된 오징어를 물로 씻어 먹기 좋게 잘게 잘랐다. 그리고 김치도 적당히 잘라 그릇에 함께 넣었다. 오징어가 좀 많은 듯하여 김치도 좀 더 넣고 밀가루도 넣고 물도 넣고 재료들을 잘 섞었다. 반죽이 잘 되었나? 싶기도 하고 반죽이 너무 질떡거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밀가루를 좀 더 넣자니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일단 한 개만 부쳐보고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기름을 두르고 예열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반죽을 조금만 떠서 익히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김치전이 익어가는 냄새가 맛있게 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한 면이 익은 듯하여 전을 뒤집으려고 하는데 전이 다 부서졌다.

'앗! 이게 아닌데? 반죽이 좀 잘 안되었나?'

다시 한번 반죽상태를 살펴보고 잘 섞은 후에 전을 조금만 떠서 다시 익혀보았다. 이번에는 잘 되었을까? 싶은데 뒤집으려는 순간 또 모양이 흐트러졌다.

'이런 순간에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면 안 되는데?'

난 정신을 가다듬고 밀가루와 물을 좀 더 넣어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반죽을 다시 섞었다. 반죽이 아까보다는 좀 괜찮은 듯했다. 다시 한번 반죽을 떠서 프라이팬에 넣었다. 이번에는 제발 성공해라.

앞면은 잘 익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다시 뒤집으려는 순간 김치전은 으스러졌다. 벌써 3번째다. 부침개를 이렇게 어렵게 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젠장.

내가 원하는 김치전은 빠삭한 김치전인데 빠삭은커녕 모양도 안 만들어지고 내 자신감도 부서져갔다. 다시 한번 밀가루 좀 더 넣고 물도 넣었다. 반죽이 걸쭉해졌다. 왠지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김치전 반죽 양이 자꾸 늘어간다. 이래도 되나? 원래 오징어를 3마리나 넣었고 김치의 양도 많으니 이 정도 반죽은 괜찮겠지?

기름을 다시 한번 두르고 한국자 조금 떠서 다시 프라이팬에 놓았다. 반죽이 두껍지 않게 넓게 펴주고 혹시나 탈까 싶어 불을 조금 낮추었다. 윗면이 어느 정도 익혀지고 전을 뒤집어야 했다. 이번에는 잘 되어야 해! 이게 뭐라고 순간 긴장했다. 한 번에 착! 뒤집기 성공. 이번엔 김치전답게 익어갔다. 부서진 곳도 없이 다행히 완성.

김치전을 시작한 지 벌써 20분이 넘은 시간. 열심히 속도를 내서 김치전을 하고 있는데 불쑥 남편이 왔다.

"김치전이 개떡 같네. 이게 무슨 김치전이야?"

"개떡이라고? 기분 나쁘게 개떡이 뭐야? 아내가 아무리 개떡같이 만들어도 찰떡, 아니 김치전이라고 해줘야 하는 사람이. 말도 참 이상하게 하네."

"혼자서 잘하겠다고 하더니 이건 뭐 나보다도 더 못하잖아. 아까 내가 하라는 방법대로 했으면 될 텐데 아는 척은 꼭 해가지고."

사실 김치전 반죽을 할 때 남편이 한번 참견을 했었다. 반죽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한다며 구시렁구시렁. 아무튼 김치전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의 이야기는 일단 무시하고 내가 하는 방법대로 한 것이었다.

"전은 나도 잘하거든? 그리고 유튜브에 나온 레시피가 다 맞는 건 줄 알아? 아무리 와이프가 잘못했어도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다른 남편들은 말도 예쁘게 잘한다던데 당신은 말을 그렇게 하냐?"

"나는 거짓말은 못해.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주부경력 15년 자존심이 확 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색깔이 왜 이렇게 빨개? 김치전에 고추장 넣었어?"

"무슨 고추장이야? 김치를 넣었으니까 빨갛지. 먹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다음부터는 김치전 한다고 하지 말아. 좋은 재료로 오징어 3마리나 넣고 김치전을 저렇게 완성하다니.. " 빈정대는 남편의 말에 내 마음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남편은 식빵에 딸기잼을 듬뿍 발라 우유 한 컵을 들고 유유히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쳇! 김치전 먹든지 말든지 내 알바 아니고 빵으로 실컷 저녁 때우라지 뭐."

아직도 반절이나 남은 김치전 반죽을 확 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김치전을 만들었다.

"애들아, 저녁밥 먹자."

아이들은 김치전에 고추장이 들어갔는지, 김치전이 개떡 같은지는 아무런 상관없이 잘도 먹었다.


아이들이 다 먹고 난 후,  설거지를 마치고 김치전 한 장을 접시에 올려서 식탁에 앉았다. 다른 반찬과 밥은 필요 없었다. 김치전을 만들면서 맛을 보는 바람에 이미 내 뱃속의 반은 김치전으로 채워져 있었다.

김치전을 먹고 있으려니 남편이 방에서 나왔다.

"왜 저녁 먹으라고 안 불렀어?"

내 뒷목을 만지며 부드럽게 물었다.

"아까 식빵 들고 방에 들어갔잖아. 어차피 김치전 안 먹을 거면서."

남편은 먹고 싶은 게 없는지 짜파게티 2개를 뜯었다. 그리고는 물을 올린 후 식탁 위에 남겨져 있는 김치전을 먹었다.

"김치전 안 먹는다면서 왜 먹어?"

"배가 고파서 먹는다. 그런데 당신, 김치전이 짜다. 알고 있어?"

알고 있었다. 김치전에 김치가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인가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밥하고 같이 먹을까 하다가 배가 부를 것 같아서 참고 먹는 중이었다.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남편이 또 묻는다.

"김치전이 왜 이렇게 매워?"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남편아. 나도 김치전이 매워서 주스를 한 컵 가득 따라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차마 남편에게 대꾸도 못하고 접시에 담긴 김치전 한 장과 주스 한 컵을 겨우 다 먹었다.


개떡 같은 김치전으로 내 자존심이 저 지하 100층쯤 추락한 오늘, 기분 나쁘게 배부르다.

간만에 글감을 던져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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