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예약된 시간에 맞춰 치과로 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을 위한 치과 예약이 아닌 나의 치료를 위한 치과 방문이라니 얼마 만에 가는 것인가. 구강검진 이후로 치아가 가끔은 시리고 아플 때도 참고 가지 않았던 치과였다. 2주에 걸쳐 딸의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를 방문했는데 이번엔 나를 위해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예약을 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양치를 한다. 어차피 스케일링하러 갈 건데 양치를 한번 더 한다고 깨끗해질 리 없지만 그래도 꼼꼼히 양치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치과 가는 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촌스럽게 왜 이런담. 스케일링하러 가면서 긴장을 하다니. 스케일링! 그 느낌 아니까. 하지만 마음먹을 때 해야 하는 법.
치과는 건물 2층에 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치과 특유의 소독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계단을 오르며 치과가 가까워질수록 그 냄새는 더욱더 진해졌다. 일부러 예약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병원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약간의 대기 끝에 긴 의자에 몸을 뉘었다. 치위생사 그녀는 스케일링을 먼저 하고 의사 선생님 진료가 있다고 했다,
"의자 위쪽으로 더 올라와주세요."
여기 병원에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낯선 목소리, 낯선 얼굴의 그녀다. 그동안 나를 해줬던 치위생사가 아닌 낯선 그녀에게 받으려니 살짝 긴장되었다.
그녀는 내 얼굴 위로 초록색 천을 덮었다.
"스케일링 시작할게요. 입을 크게 벌려 주세요."
"아.."
"네,. 위쪽부터 스케일링 시작할게요."
그 순간 치이이~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며 얇은 물줄기가 내 치아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순간 시린 느낌과 함께 물이 내 얼굴로 튀는 게 느껴졌다.
위쪽 치아를 한 3, 4개쯤 했을까?
갑자기 코가 매워지기 시작하고 무척 불편함이 느껴져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는 손을 들었다.
"코에 물이 들어간 것 같아요. 컥컥."
"네. 스케일링하다 보면 코에 물이 들어갈 수 있어요. 잠시 멈춰드릴까요?"
"네.... 잠시만요."
그녀는 의자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스케일링하다가 콧속에 물이 들어갈 수 있다고? 물로 청소를 하니까 튀길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그렇지 스케일링하다가 물이 콧속에 들어간 경우는 처음이었다.
"혹시 스케일링해 보셨지요?" 그녀가 물어본다.
"네. 그런데 스케일링을 하다가 물이 콧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나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네. 하다 보면 코에 물이 들어가기도 해요. 많이 불편하시면 잠시 기다렸다가 시작할게요."
"네.... 콧속이 매우 불편해요. 잠시 있다가 할게요."
입을 헹구고 콧물을 닦으며 기침까지 하는 내가 갑자기 스케일링도 제대로 못하는 어른이 된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오랜만에 해도 그렇지 이렇게 참기 힘든 경우는 없었다. 혹시 이분 스케일링 경험이 적은 분이신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시 의자에 눕지 못하자 원래 해주시는 치위생사 선생님이 직접 해드린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싸해진 코를 진정시키고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다시 의자 위로 누웠다. 혹시나 물이 또 들어갈까 스케일링을 오늘 끝낼 수가 있을까 걱정하며 누웠지만 숙련된 그녀는 내 콧속으로 물을 튀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아랫니부터 시작한 스케일링은 약 10여 분간 지속되었다,
치이이~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치아와 잇몸 사이를 강타하는 물줄기를 생생하게 느끼며 내 온몸은 참아내야만 했다.
"아.. 아..."
'네. 네. 아프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잘하고 있어요."
"으... 으.... 으"
"네. 불편하시죠? 알아요. 거의 다 끝나가요."
"아. 아.." 아프다고 소리를 좀 더 내어본다. 그리고 손도 들어본다.
"네. 괜찮아요. 입을 크게 벌려주세요."
아니.. 도대체 왜 불편하면 손을 들으라고 하고선 멈춰주지를 않는 거야? "불편하시면 손 들어주세요." 이 말은 역시나 그냥 한 말이었어. 어차피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청소할 거였으니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소름 끼치는 물줄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스케일링이다. 나이가 많아도 치과를 많이 다녔어도 여전히 스케일링받는 일은 편치 않다.
얇고도 세찬 물줄기가 내 치아와 잇몸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어깨는 점점 굳어져가고 온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두 발은 엑스자로 꼬아진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본다면 나잇값도 못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스케일링은 잘 마쳐졌고 내 잇몸과 치아 사이를 차지했던 치석은 말끔히 사라졌다. 잇몸은 붓고 피는 많이 났지만 속 시원하게 물샤워를 마친 치아를 보니 치과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있었다. 충치 진행이 될만한 작은 것이 2개 발견되었으나 치료할 상황은 아니니 지켜보자고 하셨다. 진료받기 전 그렇게 많던 대기실의 환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스케일링으로 잇몸이 아플 수 있으니 일주일간은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고 스케일링 외에는 큰 다른 문제점이 없다고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치과를 들어올 때와는 달리 병원 문을 나설 때는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6시 30분 가까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아빠가 차려주는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 치과 잘 다녀왔어요?"
"응. 잘 다녀왔지. 그런데 엄마 잇몸 청소하는 동안 피가 많이 나서 좀 아파. 지난번 우리 딸은 이 청소할 때 아픈데도 잘 참았네. 앞으로는 양치 잘해야겠어. 사실 엄마도 치과 가는 것은 무섭거든."
"우리 앞으로 꼼꼼히 양치하자."
"네."
맛있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 입 먹고 싶었으나 방금 입 속 청소를 말끔히 하고 온 터라 오늘만큼은 음식으로 더럽히지 싶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깨끗하게 청소한 수고와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저녁은 과감히 패스해 본다. 사실 소독약도 발라 놓아서 입맛이 없었다. 거울 속 치아를 바라보며 한번 더 다짐해 본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치아 관리를 잘해보자.'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