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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Dec 10. 2022

추운 겨울,  당신의 손과 발은 안녕하신가요.

11월의 따스한 겨울 초입이 지나고 기온이 급강하 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이 되면 내 손가락, 발뒤꿈치, 발가락은 쫙쫙 갈라지며 벌건 피를 드러낸다. 발뒤꿈치를 온전히 바닥에 내딛지 못하고 살금살금 걸어야 하는 나의 뒷모습은 주인이 깰까 무서워 조심조심 걷는 도둑놈의 모습이다.

매일매일 손을 써야 하는 가사 일을 할 때에는 장갑은 필수요. 핸드로션, 핸드크림은 내 핸드백 속의 립스틱보다도 가장 1순위 소장품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많은 아이들 앞에 내 손을 보여야 하는 직업이지만 내 손은 항상 부끄러움이었다. 두 엄지손가락에는 항상 밴드가 붙어 있어야 하고 다른 손가락 지문 무늬는 잘 보이지도 않아 내 손가락으로는 직장의 무인 경비 해제를 풀 수도 없다.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바로 내 손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언제 불어오나 기다리지 않아도 내 손이 먼저 건조해져 오면 난 가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아주 정확한 신호다.

언제부터였나. 이렇게 나의 손과 발이 가뭄이 심한 날의 논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신혼 초 5년간의 친정살이를 할 때에는 내 손이 지금처럼 건조하진 않았다. 살림을 할 일이 거의 없었고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몸은 제일 행복한 날이었지만 친정엄마는 가장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으리라. 친정으로부터 나오는 그 순간부터 모든 가사 일은 내 몫이 되었고 손에 물마를 틈이 없이 열심히도 일을 해야 했다. 그 흔한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설거지, 빨래, 청소 등등.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점점 노인의 손이 되어갔다.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고 살갗이 벗겨지고 벌겋고 갈라지고 피가 나고 피부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와도 전혀 낳아지지 않다. 낳아졌다면 그건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할 때였거나 습기가 많은 끈적끈적한 여름날 그때뿐이었다. 이젠 나아지지 않는 고질병이 되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집으로 절룩거리며 들어와서 양말을 벗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뒤꿈치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지 않은가. 살이 거칠거칠하니 견디다 못한 양말 천이 구멍났던 것이다. 하루 종일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녔단 말인가. 갑자기 덮친 큰 깨달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발뒤꿈치는 쩍쩍 갈라져 피도 나고 있었다. 아. 안 되겠다. 오늘 밤은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자야겠다.


우리 엄마 발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오면 엄마는 늘 발뒤꿈치의 허연 각질을 손톱깎이 칼로 벅벅 문지르고 있었다.

“엄마, 안 아파? 그걸 왜 긁는 거야?”

물어보는 딸의 물음에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열심히 발뒤꿈치를 열심히 정리하셨다. 엄마의 발뒤꿈치는 왜 항상 저러는 것일까 궁금했다. 어른이 되면 저런 발뒤꿈치를 가져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 엄마만 그런 건지. 우리 엄마도 늘상 손에 물마를 틈이 없었고 처녀시절 곱고 예뻤던 손은 거친 모래가 되었다.

그 시절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는 40이 넘어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이고 몸에서 땀이 잘 나지 않는 그 순간부터 내 몸은 무척이나 건조해졌다는 것을. 사포같이 거친 내 손이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 없는 나는  악수가 그렇게도 부담스럽고 싫었다. 감추고 싶은 내 비밀을 들킨 것만 같았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40대지만 이미 속으로는 늙어버린 노인 같은 나를 드러낸 것만 같았다.




얼마 전 딸이 의자에 앉아 발을 책상에 올린 채로 자신의 발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뭐하니?”

깜짝 놀란 딸은 자신의 발바닥을 내 눈앞에 비췄다.

“엄마, 내 발바닥 봐봐. 발뒤꿈치에 하얀 선들이 생기고 거칠거칠해졌어.”

“뭐?”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 꼬맹이 발이 벌써 왜? 모전여전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뽀송뽀송하고 발바닥에 땀이 많아야 할 나이인데 벌써 건조하다니.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깜짝 놀란 나는 나처럼 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발바닥 깨끗이 씻고 오렴. 엄마가 발에 로션 발라줄게. 그리고 수면 양말 꼭 신고 자자. 안 그러면 엄마 발처럼 이렇게 된다.”

딸은 내 발을 보자마자 화장실로 급히 달려갔다. 이내 뽀얀 발바닥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넌 이런 건 안 닮아도 돼. 발이 거칠지 않도록 매일 로션 꼭 바르렴.”

손바닥 위에 로션을 듬뿍 짜서 아이의 발을 문지르며 바르고 또 발랐다.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수면양말이 어느새 쏙 벗겨져 있었다. 이 녀석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의 잠이 깰까 싶어서 조심스레 양말을 신겨 주고 나왔다.

우리 엄마 발도 지금쯤 거친 발로 주무시겠지?

다음엔 엄마의 거친 손과 발도 로션을 듬뿍 짜서 바르고 또 발라주고 싶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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