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이들의 기말고사 기간에 우연찮게 걸린 '겨울방학 과학특강'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마침 퇴근길이었고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회전교차로에 걸린 그 글자가 내 눈에 쏙 들어온 김에, 운전하며 빠른 눈길로 작은 글씨로 새겨진 학원 이름을 빨리 익혔고, 차를 갓길에 세워둔 채 네이버에 검색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나의 빠른 실천력과 행동으로 막힘없이 학원 전화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 네. 말씀하세요.
- 과학학원이지요? 과학수업 상담을 받고 싶은데 혹시 수업시간이실까 해서요. 상담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시면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자 원장선생님은 괜찮다면서 간단히 학원 수업 일정과 수업료, 그리고 상담 가능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내 일러주신 대로 아이와 함께 저녁에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둘째가 영어학원에서 돌아오고 난 후 빠르게 저녁을 먹고 학원으로 향했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학원으로 들어섰다. 조용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 한눈에 봐도 작은 학원이었다. 원장선생님은 상담실이라고 하기에 걸맞지 않은 빈 교실 한 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전화로 이미 예비 고1이라고 이야기했고 진학할 학교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했으므로 앞으로 공부하게 될 고등학교 통합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였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현재 상황과 성적에 대한 이야기도.
- 평소 중학교 때 과학 점수가 어느 정도였니?
- 음... 잘 볼 때는 점수가 좋은데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어요.
딸은 원장선생님의 물음에 음..이라는 단어를 좀 길게 뺀 후에 아이는 천천히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성적이 들쑥날쑥했다는 거다.
- 그러면 중학교 때 배운 원소, 원자, 이온은 생각나지?
- 네.
- 그럼 Nacl이 뭔지 아니?
- 음...
헉... 대답을 선뜻 못하는 딸을 옆에 두고 점점 내가 민망해지고 있었다.
- 네. 어머니 괜찮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배운 것이라 아마 잊어버려서 그럴 거예요.
- 아.. 네....
- 어머니, 제가 올해 가르친 고1 여학생들이 있는데 처음에 이렇게 잘 몰랐던 친구들이 중학교 내용부터 잘 모르는 것은 다시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열심히 하니까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제 말대로 열심히 한 친구는 지금 과학 1등급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과학원장선생님은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옆에서 민망해하고 있는 날 염려해서 그런지 아니면 저는 이렇게 학생의 실력을 높여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지 아무튼 열심히 하면 결과는 좋을 것이라는 희망의 말을 남겨주었다.
- 어머니, 제가 요즘 아이들을 보고 가감 없이 말씀드리면요. 요즘 애들이 좀 무식해요. 알고 있는 거 같지만 가르쳐보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우리가 지난 시절 거쳐왔지만 그때보다도 요즘 아이들이 더 많이 모른답니다.
- 네. 맞아요. 아이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과학도 이렇게 학원을 다녀야 하고..
- 교육과정이 2015에서 2022로 바뀌고 또 수능도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으로 준비해야 하니 예전하고 비교하면 공부할 양이 더 많고 중요하답니다. 아무튼 좀 늦었지만 방학 동안 열심히 잘 가르쳐보겠습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원장선생님과의 상담은 끝나고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주 2회 과학학원 수강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는 중학교 과학공부는 시험 때마다 내가 옆에서 봐주면서 3년 내내 공부시켰었다. 성적은 좋기도 했다가 나쁘기도 했다가 반복하긴 했지만 그런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망설임 없이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아주 많이 민망했다. '어떻게 저걸 모를 수 있지? 간단한 질문조차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너는 도대체 3년 동안 뭘 배운 거야?' 하며 아이의 수준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과학학원은커녕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생활을 한 이후로는 영어, 수학 학원 근처에 가지도 않고 오로지 혼자 3년의 시간을 거쳐 대입을 치렀다. 물론 그 시절에도 과외나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학원에 시간을 투자해 가며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내 주위에는 별로 없었다. 주로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다. 이제는 학원 없이는 공부도 대입도 준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도 열심히 홀로 공부하며 자신의 성과를 내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니까.
요즘 방학 동안 막내와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기간을 너무 길게 하면 느슨하게 공부할까 봐 다음 2월 초에 시험 보는 것으로 접수를 마친 뒤,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같이 공부하고 있는 딸이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 한국사 교재에 나오는 단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공부를 못하겠다고. 그래.. 모를 수 있지. 그런데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볼 수도 있고 인강을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으니 설명을 잘 들어보면 될 일을.... 한국말을 읽고 있는데 뜻을 모르겠다는 딸의 모습을 보고 답답했지만 어쩌겠는가. 설명을 해주었으나 모르는 단어가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인강부터 듣고 한꺼번에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옛날 초등학교 다녔을 때, 아니 국민학교 다녔을 때 선생님들이 내주던 과제 중에 모르는 단어를 찾아서 공책에 적고 뜻을 적어오게 하는 숙제가 있었다. 교과서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고 전과에서 단어의 뜻을 찾은 뒤 반대말, 비슷한 말까지 적어 갔었다. 그때는 그 과제가 귀찮고 힘들었는데 생각해 보면 귀찮았던 과제 덕분에 단어를 몰라 이해 못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있었더라도 사전을 찾아가며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국어 읽기 본문 뒤에 있는 문제를 미리 전과를 보고 풀어갔거나 시험 볼 때면 전과를 가지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전과밖에 없던 그 시대보다 자료가 많은 요즘, 화면을 열면 무료 강의도 있고 유료강의도 있는 이 시대에 왜 아이들은 더 무식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끔씩 동료교사와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내가 우리 반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알고 있을 것 같은 내용도 전혀 모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가히 내가 낳은 아들, 딸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무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여러 책이나 보고서, 인터넷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으므로.
뭘 알고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는 이 아이들 앞에 입시라는 큰 산이 있어서 어떻게 이 산을 넘어갈지 걱정이다. 하지만 걱정이 무슨 소용이랴. 슬프지만 부모가 끊임없이 대주는 돈이라는 부스터, 연료로 열심히 모르는 것을 메꾸며 달려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