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첫날,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 〈절창〉을 펼쳤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는 거의 없었다. 아니,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는 편이 맞겠다. 줄거리나 타인의 감상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감각으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 그것이 이 소설에 대해 내가 갖출 수 있는 예의이자, 미지의 설렘을 가장 잘 만끽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저 수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은 베스트셀러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 막연한 이끌림으로 지난 연말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었고,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내 손에 들어온 책이었다.
‘절창’. 칼이나 유리 조각처럼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를 뜻한다는 이 제목은 책을 펴기 전부터 묘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자, 문장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그동안 알지 못했고 접해본 적 없는 생경한 단어들이 내 시선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 낯선 어휘들이 빚어내는 독보적인 문체에 나는 속절없이 매료되었고, 어느샌가 걷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 붙박인 채 단숨에 마지막 문장까지 내달리고 말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가시지 않는 짙은 여운 탓에, 나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두 번째 읽기를 시작했다.
상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여자와, 자신의 상처를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읽어달라고 애원하는 남자. 이 기묘하고도 슬픈 설정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내 앞에 던져 놓았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읽어낼 수 있을까? 설령 읽었다 한들, 그것이 진심인지 혹은 방어기제로 가장된 감정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한동안 내 마음과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구병모 작가는 이 소설을 “동사 ‘읽다’에 접붙이기해서 생각한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상처로 사람을 읽는 일과 텍스트를 읽는 행위 사이의 유사성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가 찾아낸 답은 바로 ‘오독(誤讀)’에 있었다.
텍스트를 잘못 읽는 일, 혹은 타인의 말을 오해하는 일. 오독은 분명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지만, 그것이 꼭 피해야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완벽해 보이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오해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 입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독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읽기는 예정된 실패이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게 인간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예정된 실패’ 일지도 모르며, 그 불가능함 속에서도 끝내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완벽한 이해’라는 꿈을 내려놓고 오독할 준비를 하고 싶다. 비록 그 해석이 틀릴지라도, 다시 묻고 다시 읽어내려는 그 노력 자체가 곧 사랑임을 이 책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소설 속 남자 문오언이 자신의 상처를 읽어달라고 애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 나를 ‘제대로’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한 권의 난해한 책일지 모른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가까이는 우리 가족,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기억하며, 그들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