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그 말이 상처가 될 줄 몰랐어
사람으로부터 받은 위로와 용기가 있는 것처럼 사람으로부터 상처도 받게 된다.
경험하기 전에는 나조차도 몰랐던, 이혼이라는 상황을 겪으며 상처가 되던 말들.
친정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뒤였다. 사촌언니가 다급하고 의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 어디야?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왔더라"
나는 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서 언니는 우리가 다툰 것도, 내가 친정집으로 돌아온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언니는 한 달음에 우리 동네까지 달려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언니를 만나야만 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말해야 했던 그날 언니는 그동안에 내게 있었던 일들을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아마도 언닌 별 뜻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안타깝고 속상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 반려자를 선택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니까. 그러나 언니가 무심결에 내뱉은 그 말은 내게 큰 상처였다.
'네 선택은 틀렸고 너는 실패자야'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고 졸지에 사람 못 보는 모자란 여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잠깐이지만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사람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결국 그걸 알고도 결혼을 선택한 건 나고 그가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오랜 시간 고민하며 이혼을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무심결에 툭 날아온 그 말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언니는 원랜 나를 잘 달래서 화해하라고 다독일 마음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오히려 잘했다며 내편에서 위로해주고는 집으로 들여보냈다. 사실 언니는, 여자 형제가 없는 내게 늘 든든하고 의지되는 사람이다. 다만 언니도 나도 그 말이 상처가 될 줄은 몰랐을 뿐.
친구와 여행을 할 때였다. 친구는 "네가 결혼하고도 우리가 이렇게 둘이 여행 갈 수 있다니!" 하면서 즐거워했고, 쉼 없이 그에 안부에 대해 물어오던 친구에게 나는 결심하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이혼했다고.
친구는 무척 놀라더니 이내 다정하게 많이 힘들었겠노라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보탰다.
"난 사실 이혼은 반대하지만, 네가 결정한 것을 존중해. "
이혼을 반대한다고? 난 그 말이 무척 의아했고 조금은 무례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삶을 깎아먹고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던 결혼생활을, 그 어둠에 물들어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나 스스로 결혼생활을 박차고 나온 것이 누군가 반대한다 안 한다 왈가왈부할 수 일이란 말인가? 친구는 나에게 이런저런 위로의 말과 다정한 말들을 해주었지만 연거푸 "난 이혼을 반대하지만...."이란 말을 빼먹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고 친구의 말이 정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미혼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거라고, 나 나름대로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이 기억난다.
집에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려고 가족들 모두 애써주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엄마가 무심결에 늘 하던 잔소리를 하신 게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다이어트'였다.
본래 먹는 대로 잘 찌는 타입인 나는 때가 되면 다이어트를 하고 조금만 풀어지면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일수였다. 때문에 대학시절부터 내 마른 몸은 엄마의 염원이었고 소망이었다. 정작 나는 통통한 내 몸에 별 불만이 없었는데 (... 본의 아니게 작은 얼굴 덕에 사이즈를 속일 수 있는 사람) 엄마의 다이어트 덕에 나 역시 늘 다이어트에 집착한 것도 있었다. 아무튼, 결혼 전에는 식을 위해 날씬하게 살을 뺐다가 결혼 후 누구나 그렇듯 (세계맥주 4캔 1만 원의 유혹과 내 생에 처음으로 새벽 1시에 곱창을 시켜먹을 수 있다는 엄청난 일) 덕분에 살이 찌게 되었고 엄마는 늘 하던 대로 살 빼!라는 잔소리를 쉬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배가 고파져 저녁은 뭘 먹을 거냐며 말했는데, 엄마가 예의 그 한 번씩 하는 잔소리 폭탄& 자극적인 말 (+짜증 추가)를 날리는 것이었다. 여느 때였으면 웃으면서 받아치거나 아무 소리 없이 넘겼을 일이지만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그 무엇도 다른 스트레스를 받아낼 수 있는 심리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난 소리치고 있었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아무것도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 겨우 버티고 있다고!!!"
집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사실 엄마는 그냥 일상적인 말을 한 것이다. 그날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지, 돌이켜보면 참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이후에도 나는 불안정한 나 자신 때문에 몇 번 엄마 아빠와 크게 다투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불쑥불쑥 소리치며 화를 내는 내 자신에게 엄마 아빠도, 나도 놀라고 상처를 받았다. 그랬다. 그건 결혼생활이 내게 남긴 후유증이었던 것이다.
화가 나도 화를 누르며 조곤 조곤 대화하던 나는 결혼생활 동안 이어진 다툼과 싸움에 사라져 버리고, 그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마치 그 사람처럼) 목청 높여 소리치는데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새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화를 내고 소리치고 있었다. 바로 그런 나 자신을 깨닫고 이러다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무서워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이혼이 남긴 상처들 중에 가장 속상한 점은 이것이 가족들에게도 상처가 된다는 점이다.
자식 자랑 한창인 엄마 친구분들 사이에서 말없이 있어야 하는 엄마와, 사촌 동생의 아이들을 예뻐해서 내 손주도 기대하셨을 아빠, 누나의 행복을 빌며 내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간 날, 집 앞 단골가게에서 담배를 사며 사장님에게 "우리 누나 결혼했어요."라고 하면서 눈물짓던 동생. 그 사람들에게 안겨준 상처를, 어떻게 해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역으로 말하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난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가족들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엄마도 마지막까지 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아주 잘, 꽁꽁 숨겼더랬다.
가족이 상처 받고 걱정하는 게 싫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하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내가 그 불행을 다 떠안고 그대로 행복한 척 살았다면, 그게 정말 내 부모님이 원하는 일일까? 하고.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었을 것이다. 내가 불행한 삶을 버티면서 살아내느라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