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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Feb 29. 2020

사람, 그리고 사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처음에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에 이르기까지 나는 주변에 거의 말하지 않았다.

정말 친해서 자주 보는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칩거하다시피 생활했는데, 그래도 언젠가 말해야 할 날이 오기 마련이다. 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직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했던 나는 종종 눈물을 보이며 이런저런 얘길 했고 친구들은 공감해주기도 하고 같이 웃고 울어 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원래 사람을 잘 믿고 마음을 내어주는 타입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뒤통수도 종종 맞고 (그래서 납작해졌나) 상처도 받곤 했다. 트리플 A형에게 인간관계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마련이다.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다가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는 아주 팔랑귀스럽고 갈대 같은 사람. 그게 나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받을 수 있는 상처 중에 이혼처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처음엔 나의 평생 반려자라고 생각한 그 사람과 10년의 계획을 세우며 들떴는데 점차 그 미래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의 선택이었고 내 사람이니 어떻게든 1년만 노력해보자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그와의 6개월을, 4개월을, 한 달을, 일주일을 내다볼 수 없게 되던 순간.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불안해하며 잠 못 이루던 날들.

누군가의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꿈이 점점 옅어져 가던 그 순간에는, 작은 고민까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던 친구들에게조차 내가 가진 고민과 우울이 너무나 거대해서 말할 수가 없었다. 웃기도 잘하고 투덜대기도 잘하지만 시간 지나면 곧잘 잊어버리던 나란 인간이 감당되지 않는 거대한 우울을 맞이하자 선택한 것은 홀로 떠안기였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혼자 견뎌 내고 나서야 나는 몇몇 친구에게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우울과 짐을 나눠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말하기 싫었고 한편으론 내가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웠던 것도 컸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서 조금씩 주변에 말하자, 사람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내게 위로를 안겨주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는데, 여행지에서 친구에게 내 이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늘 사랑이 넘치고 애교가 많은 이 친구는 내 이혼 얘기에 무척 속상해하면서, 먼저 서울로 돌아가던 날 꼭 자기 간 뒤에 보라며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친구가 떠난 뒤 열어본 봉투에는 용돈과 함께 작은 편지가 있었고 그녀가 그 편지에 담았던 마음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 물론 하고 싶은 거 하라며 넣어준 용돈도 잊지 못한다)

무엇이 됐든 너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정성스럽고 애정 어린 글귀.  언제고 네가 행복하길 바라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던 진심 어린 응원이었다.

다른 친구는 유난히 나를 불러내었다. 이것저것 묻지 않았고 그냥 늘 하던 대로 맛집을 가고 영화를 보고 서로 살빼잔 소리나 해대며 별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친구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일부러 회사일을 서둘러 마치고, 연차를 내고, 여행을 계획하며 나를 살펴주려 애썼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전혀 아닌데? 내가 먹고 싶어서 가자고 한 건데? 내가 보고 싶어서 보자고 한 건데? 너 한가하잖아 "라며 웃어넘기던 그 무뚝뚝한 말과 평소와 다르지 않던 행동들. 그것이 오히려 내겐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어떤 위로는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가 된 뒤 처음 맞는 생일에 나를 집으로 불러 진수성찬을 차려주던 친구, 마음이 담긴 작은 편지와 선물,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의 공감과 따듯한 손으로 체온을 전해주던 마음들. 혼자만 앓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 힘들었지... 왜 이제야 얘기했어... 잘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라며 안아주던 그 사람의 온기. “내 주변에 너 말고도 많아! 별거 아니야! “라며 정말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만들던 친구의 웃음.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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