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 윤 Jan 24. 2021

난 이혼을 반대해

너무나 무거웠던 선택을 가볍게 만들어버린 그 말

며칠 전 쓴 우리 이혼했어요에 대해 쓴 글이 핫하다.

갑자기 늘어난 조회수에 들어가 살펴보니 다음 메인에 소개된 모양이었다. 최근 방송본을 보다 깻잎이 이혼을 하기까지 고민했을 시간들이 너무나 공감 가서 적었던 글인데,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화제성 때문에 메인에 노출되었나 싶기도 하다.


 매번 느끼지만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의 위상은 어마어마 것 같다. 한 번 소개되면 조회수 10000 정도는 우습게 넘겨버리고 알림은 끊임없이 울린다. 나는 여전히 나의 글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게 부끄럽지만 한 편으론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게다가 클릭도 모자라, 잘 읽었다는 의미로 눌러주시는 좋아요에 마음을 담은 댓글까지. 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래서 가능하면 대댓을 꼭 달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 다음 메인에 노출된 이 글만은 약간 예외로 두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에 주시는 관심과 댓글은 여전히 감사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의 내용과 의견이 내 이혼 얘기가 아니라 타인의 대한 얘기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이혼을 결정하고 마음을 겨우 다잡았던 시절, 가장 친한 친구 몇에게만 이혼에 대해 말하기로 결심하고 한 친구에게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날, 그 친구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내심 화가 났던 말이 있다.


"난 이혼을 반대하지만 너의 의견을 존중해."


예전에 썼던 에피소드에서도 적었던 일이다. 그 친구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였는데, 내가 이혼했다고 알리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혼을 반대한다고? 하고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그녀는 내 말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가 화가 나 있음을 인지 못하고) 굉장히 확신에 찬 어조로 몇 번이고 이혼에 반대한다,라고 말해왔다.


'이혼에 반대한다'라.

내가 이 말에 대해 화가 났던 이유는 '이혼'이라는 일이 타인의 찬성 혹은 반대로 거론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가 몇 달에 걸쳐 엄청난 고민과 고통 속에 힘겹게 내렸던  결정이 타인이 찬반으로 결정 지을 수 있는 가벼운 일이 되어버렸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웠던 이혼이란 단어의 무게가,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찬성과 반대를 논할 정도로 가벼운 일로 치부되어 버리다니. 고민으로 가득했던 내 지난 시간들은 뭐가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난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직접 결혼이나 이혼을 경험하지 않는 한, 혹은 그 정도의 큰 선택을 해본 적이 없는 한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재혼 이야기를 하는 유 깻잎, 최고기의 에피소드를 보며 느꼈던 것은, 깻잎이 고기와의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통을 겪었을지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깻잎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른 모든 상황과 이유들을 차치하고서 어찌 됐든 그녀는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으며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란 점을 알기에 바로 그 점에 공감하며 글을 썼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어린 딸이 있다. 그러니 깻잎은 나보다 훨씬 더,  이혼을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방송분만을 보면 시청자가 느끼기에 깻잎이 그녀의 시아버지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이 미흡했다던지, 딸에게 좀 더 애정 어린 시선(=눈물)을 보여주지 않는다던지 하는 점들이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는 더욱 질타를 받는다. 방송을 쭉 시청해온 나도 깻잎에게서 뭔가 냉담함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깻잎과 고기 부부가 겪었던 시간들을 어느 한쪽이 잘했다, 잘못했다, 혹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부부 사이엔 수없이 많은 일이 존재한다. 나 역시 아직도 부모님이 모르고 친구들도 모르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은 아주 작은 편린들뿐이며 정작 부부였던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예민하고 깊은 얘기들은 내 안에 깊게 묻어 놓았다. 나도 이럴진대 하물며 편집된 영상으로 한 부분만을 보여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을 본 우리가 겨우 그 작은 조각들만을 갖고 그들의 선택을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 부부에게 너는 틀렸다 이기적이다 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무도 그 사람이 되어 그가 지닌 깊은 마음들을 다 알 수 없으므로.




내가 나의 이혼을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깻잎과 고기도 그럴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 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며 왜 이혼했는지, 왜 재혼할 수 없는지 전부 알 순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엄청난 고민과 상상도 못 할 무게 속에서 그들이 흘린 아주 작은 조각들 뿐이며, 그 조각들이 그들이 힘겹게 내린 선택을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나무랄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수없이 많은 시간들 속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결정을 내렸다.

과연 우리는 겨우 짧은 시간 보고 들은 것을 통해 그들의 삶을 판단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들 엄청난 결정인 '이혼'을 찬성하고 반대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나의 이혼이 지닌 무게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이혼이란 선택을 하기까지의 일도, 선택에 따른 무게도 타인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린 누군가 이혼에 대해 조언을 구할 때 조언할 수 있을지언정, 그에 따른 그 사람의 선택을 안타깝게 여길 수는 있을지언정, 타인의 선택을 찬성할 권리도, 반대할 권리도 없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14화 그녀를 위한 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