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도 우리 이혼했어요에 대해 썼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나는 이하늘 커플이나 최고기 유 깻잎 커플에 마음이 많이 갔는데 이번에 보게 된 방송에서는 아직 깻잎(편의를 위해 존칭은 생략함)에게 마음이 남은 고기가 재혼에 대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깻잎은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 이유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이미 고기가 남자로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재혼한다고 해도 본인보다 고기가 더 노력하려 할 테니 언젠가 지치게 될 것이라는 것. 어설프게 대답해 희망을 주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것.
지금 지난날을 후회해봤자 너무 늦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며 사는 게 맞다는 말로 그녀는 말을 마쳤다. 안타깝게도, 가장 재시작을 바랐던 커플의 만남은 역시 어려울 듯하다.
그렇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깻잎이 그럴 거라고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와 많이 싸웠다. 본래 나는 누군가와 싸울 때 오히려 차분하게 이야기로 풀어가려는 타입이고 그는 흥분해서 앞 뒤 안 가리고 소리치며 달려드는 성격이라, 처음엔 그와의 싸움(방법)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일단, 그와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웠으며 그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내가 보기 싫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당일엔 그럴지 몰라도 다음날이면 마음이 가라앉는지 차분히 대화를 하자고 해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싸우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면서 오해를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그는 전날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 사과해오곤 했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지고, 희망이 생기고는 했었다. 그래. 이렇게 해나가다 보면 더 좋아질 거야. 이 사람도 나도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맞추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야. 좋아질 거야.
... 하지만 그건 내 큰 오산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싸움은 더 심해지고 격렬해져 나중엔 나 역시 그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마치 그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곤 했다. 그렇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깨달았던 것이 결정적으로 이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깻잎은 시댁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고 고기와의 관계도 소홀해졌다고 느끼며 외로움에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것도 프로그램을 보며 대충 추측하는 것일 뿐, 실제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에 그 커플을 보면서 느낀 것은 깻잎은 고기에게 완전히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고기에게 했던 단호한 말이나 행동이 마치 예전의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고, 실제로도 성격검사에서 사회적 책임도가 매우 높게 나왔을 정도로 (심리상담 선생님이 매우 놀라워하셨다...) 자타공인 책임감 넘치는 장녀 스타일인데, 그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결혼이란 단지 남과 여 두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각 집안이 결합하는 하나의 사회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다. 그러므로 내가 그와의 결혼을 결정한 순간 나는 우리 가족과 그의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 선택한 나의 새로운 삶, '결혼'에 대해 최대한의 책임을 지고 끝까지 노력하고 싶었고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나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그러고나니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해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에.
우리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단순히 그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싸움의 원인 제공 대부분이 그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로 인해 그가 늘 내게 사과를 해오고는 했다. 그럼 나는 늘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 속에 우리 이런 것들은 하지 말자. 나도 조심할 테니 이건 당신도 조심해줘. 이런 건 잘못된 일인 거 알잖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함께 노력해보자. 와 같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것들이 고쳐졌다면 나는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없이 참고 타이르고, 대화하려 애쓰면서 나 역시 그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눈치를 살피고 이렇게 하면 그가 좋아할까 저렇게 하면 싫어하겠지 하면서 애썼지만 그는, 우리의 결혼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내가 피폐해지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결혼, 이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그에게 내 마음 표현하고 노력해보자 말했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도 잘 못 자니 마음의 상처로 인해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불안증처럼, 그와 대화를 하다 싸울 기미가 보이면 (자주 싸우다 보면 싸움 직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피폐하다 못해 전혀 다른 사람처럼 걷잡을 수 없이 변해버린 내 모습을 깨달았고, 그 순간이 너무나 끔찍해서, 이러다 내가 미쳐버리고 말 거야. 어서 그만둬야 해.라는 생각으로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이혼을 진행하면서 나는 딱 한 번 흔들린 적이 있었다.
그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눈물로 말했을 때인데, 그때만큼은 나도 한순간 그를 다시 용서해줄까 싶은 마음이 들만큼 흔들렸었다. 그래도 사랑한 사람인데, 아무리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들 마음이 한 번에 식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울면서 우리의 지난 시간을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 나 역시 더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안 그럴게.라는 말을 믿고서 희망을 품었다 더 깊은 절망으로 떨어지길 수없이 반복했던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므로.
재혼을 말하는 고기에게 깻잎이 했던 말은, 지금 와서 깨달으면 어떡해. 내가 그때 계속 말했잖아. 그때는 왜 몰랐어. 하는 말이었다. 나 역시도 그 마음을 잘 안다. 뒤늦게 후회하고 미안하다, 다시 잘 살아보자 라고 하면 무얼 하는가. 나는 이미 긴 긴 시간을 당신과 행복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포기했는데.
출처:TV조선 홈페이지 영상 캡처
변하지 않는 고기의 모습을 보며 깻잎은 어느 순간 그와의 관계를 포기했다고 했다. 결국 그것이 이혼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마음.
그러므로 그 사람은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해보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면서 깻잎의 말과 행동을 보며 나와 같은 시간들을 겪었을 거라 짐작했다. 이혼을 결심한 사유는 다를지 몰라도 결혼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희망을 품고, 또 실망하고, 포기했을지 알 것 같았다. 이혼 결심이 섰을 당시 그녀에게 고기라는 사람은 긴 시간 동안 많은 노력과 실망을 거쳐 포기에 이르러 완전히 끝나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두 사람에겐 아직 어린아이가 있고 그런 아이를 위해서라도 재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나 역시 깻잎의 마음을 공감하고 잘 알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아이를 위해 잠시 두 사람의 재혼을 응원했더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끝나버린 마음을 되돌리는 건 무의미하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될 테니. 나는 오히려 깻잎이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내비치는 것이 고기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생활의 경험으로 깻잎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괜한 미련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게 얼마나 상대를 힘들게 하는 일인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완전히 관계를 놔버렸을 때는 절대 돌이킬 수 없다. 그 사실을 고기는 몰랐고, 깻잎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덧) 여담으로 깻잎은 고기에 대해 완전히 놔버렸다-라고 표현하면서 그때부터 다이어리를 썼다고 했다.
재밌는 건 나 역시 그와의 관계에 대해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일기를 썼다는 사실이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깊은 상처들을 어딘가에 털어놓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그리고 훗날 그가 나에게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던 날 밤에, 나는 그 일기들을 읽으며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때의 일기는 아직도 지우지 않고 남아있고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기 전에는 문득 생각날 때 찾아서 읽어보곤 했다. 지금은 일기를 읽지 않는다. 이젠 무사히 흘려보낸 과거의 일이 되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