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게 하루를 온전히 공연 준비에 쏟으며 동분서주하면서 만들어낸 공연이 끝나자 다양한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공연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번 공연은 내게 둘 다를 경험하게 한 일이었다.
연습 초기,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는 등을 돌렸고 반면 몇몇 사람들과는 꽤나 친해졌으니.
창작진과 배우들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사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친해져야 작업이 수월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했다. 원래 직업이 연주자다 보니 단체로 어울리는 생활에 익숙했고 혼자 남아있는 작가라는 포지션이 영 외로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무튼 연습이 진행되면서 나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친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출연진이고 나는 창작진이었으므로, 우리의 사이좋음은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는 서로에 대해 마음 상할까 신경 쓰며 연습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연습 초기, 친해지기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다.
힘든 연습이 끝나고 함께 동네로 돌아오던 중에 다들 배고프다는 얘기가 나와 근처 감자탕 집에 가게 되었다.
그중 A가 자신의 남자 친구 얘기를 하며 언니는 왜 결혼 안 하냐,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어 왔을 때,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서 결혼한 적 있다고 말을 해야 하나?
이혼한 사실을 말하는 게 득일까 실일까?
당연히 말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앞으로 긴 시간 함께 동고동락할 사이에서, 게다가 이 정도로 친밀감이 높아진 사이에서 지금 거짓말을 하면 앞으로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점이 싫었다. 결국 고민하다가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했었으며, 현재는 이혼한 상태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때 그 친구들의 정적이란.
내 말을 들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결혼을 앞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결혼에 대해 고민 중이던 사람들이라 두 사람 다 무척 놀란 듯했다. 가볍고 짧게 나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나간 뒤 술을 곁들이며 공연 얘기를 하고, 각자의 연애 얘기도 하며 그렇게 그날 일은 지나갔고 우리는 기분 좋게 취해서는 다음날 보자며 헤어졌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한 달, 다시는 그런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날 내가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반말하던 사이에서 다시 존댓말을 하는 사이로 어색해져 버린 지금은, 결국 내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버린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이혼이 어디 흠인가-라고들 말하지만 아무래도 득은 될 수가 없는 게 사실이고, 그것도 친한 관계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더 이상 친하지 않게 되어버린, 등을 돌린 사이에서는 약점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속이는 재주 따윈 오래전부터 재능에 없는 나라는 사람은 그게 선의의 거짓말일지라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금방 티가 나기도 하기에.
그렇기에 이미 말해버린 나의 이혼 얘기를,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숨겼어야 하는 걸까,라고.
흠 잡힐 일은 만들지 않았어야 해-라면서.
어느 정도 애매한 친분을 가진 사이에서 결혼이나 남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매번 겪는 곤혹스러움이 한때는 무척 스트레스라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울 때가 있었다.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에는 숨 한 번 깊게 쉬고 나면 그래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처는 옅어져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라 여전히 말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남자 친구 혹은 결혼 얘기를 물어오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말 돌리기도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그렇게 회피하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그 친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속이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들을 믿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내가 나의 이혼 이야기를 낯선 이에게 하는 것은 득이 될까 실이 될까.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난 결국 타인의 시선을 져버리지 못한다.
이제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은 흉터에서 욱신거림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위해서 이혼이란 약점을 드러낼 때 생기는 마음의 무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간관계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혹자는 별거 아닌 걸로 넘겨버릴 수 있지만 혹자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이혼했겠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
아직도, 삼 년이나 지난 지금도 나는 그게 두렵다.
그래서 친한 이들에게조차 그렇게 오랜 기간 숨겨왔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지금, 낯선 이에게 이혼 사실을 털어놓는 순간, 그리고 그 관계가 틀어진 순간 잊고 있던 이혼의 무게가 나를 다시 짓눌러온다.
두려움에 나를 묶어두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두려움과 불안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명확한 답은 모르겠다. 아프고 두렵다고 해놓고도, 여전히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마음을 열 것이며 아마도 그러면 또 솔직해지고 싶을 것이다. 다시 상처 받고 후회할 테지만.
그래서 앞으로는, 그전에 가급적 한 번쯤은 신중하게 거짓말을 해볼 생각이다.
예전에 브런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신이 나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깊게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사람이지, 혹은 얕게 드러낼 사람인지 알기 전까지 말이다.
여전히 나는 나의 이혼이 아프고 그 아픔을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
아문 상처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리고 상처가 낫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