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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Jun 20. 2020

이혼일기를 쓰는 이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소용이 되길

며칠 전,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렀다.

최근 마무리 지어야 할 작업 때문에 거의 들어오지 못한탓에, 또 하나는 하락해가는 조회수 통계가 보고싶지 않은 탓에 브런치를 등한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제 브런치 조회수가 갑자기 몇 백단위로 뛰어 올랐다는 통계가 보여졌다.


아, 모르는새 어딘가 메인에 소개되었던 걸까.

100아래로 곤두박칠 치던 조회수가 몇백으로 뛰어오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다시 들썩인다.

며칠 밤낮을 세워 제출한 대본이 공모전에 떨어져 내 자신감도 바닥에 떨어진 날의 일이었다.



작년에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뽑혀 멘토링을 받았던 작품을 한 달가량 열심히 고쳐 제출했다.

그러기 위해서 쓰던 다른 글들도 멈췄고 두문 불출 하며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은 대본은 역시 심사위원 마음에도 들지 않았던 걸까.

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발표에 초조함은 더해졌고 결국 지원한 공모전에 떨어졌단 소식을 들었다.

어느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실제로 서류통과조차 되지 못하고 떨어졌단 소식을 들으니 오랜만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속상해서 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엄마에게 훅, 질렀다.


"나 떨어졌어!!"

"진짜 떨어지다니!!"

"이제 난 뭐먹고 살지!!"

"그래도 그렇지 한달을 밤새웠는데!!"


이리 데굴 저리 데굴하며 거실 바닥을 방황하던 나를 물끄러미 보던 엄마는 잠자코 보고있다가 한 마디를 건네셨다.


"늘 붙을 순 없잖아. 떨어질때도 있는거지. "


어...? 맞아. 그렇지.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징징대는 것을 멈췄다.

그래. 맞는 말이다. 항상 붙을 순 없고, 붙었을때도 떨어질때도 있는게 공모전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엄마가 말해주기 전까진 등한시 했던 그 말을 듣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항상 좋을 순 없어. 살아가다보면 기쁠때도 슬플때도 있는 것 처럼.




한동안 줄기차게 대본 작업을 해서 내 나름의 '완성'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어디론가 여행을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 신나게 술 한 잔을 기울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몇 날을 노트북만 붙잡고 벌개진 눈으로 글만 쓰던 나에게 주는 자체 휴식과 포상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계획을 짜고는 가볍게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술 한 잔을 하며 공모전에서 떨어졌다고 말을 하니, 모두가 위로의 말을 건내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을 덧붙인다. 떨어졌던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릴 핑계거리를 만들어주면서.

그러다 문득, 한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뭐할거야? 다시 고칠거야?

"아니. "

"아님 전에 얘기했던 그거? 조선시대? 뭐 쓸건지 궁금해"

"나도 잘 모르겠어. 좀 쉬고 싶기도 하고. 일단 떨어진 작품은 내버려두려고. 나중에 고치더라도."

"그럼?"

"글쎄... 내 얘기를 써볼까 해. "


사실 아무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 무언가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뭘 써야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브런치에 연재하던 이혼일기가 떠올랐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업보다, 이미 써둔 브런치의 글을 기초로 내 얘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전에 써뒀던 글을 쭉 읽으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되짚어 보았다. 결국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고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은걸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본격적으로 이혼 일기를 극화 시킬 생각을 하며 읽다가, 문득 내 매거진 제목인 '이혼 일기'와 동명의 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주문을 했다. 이윽고 도착한 책을 들고 한 카페에 앉아 이러저리 훑어보며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혼은 ‘위기’, ‘미친 시간’, ‘회복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위기 다시 교착 상태, 문제 직면, 결별의 단계를, ‘미친 시간 초초함, 안도와 불신, 충격, 노, 혼돈, 우울의 단계를 거친다.  모든 과정을 제대로보낼  있다면 마치내 ‘회복 시간에 들어선다. 이는 위기에 처한 존재가 다시 건강한 자아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며, 이혼이란 명백한 사실을 자신의삶과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받아들이게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 또한 나의 성장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소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서희 ‘이혼 일기’중


이거였다. 내가 하고 있던 생각. 글을 쓰며 들었던 마음.

나 역시도 작가가 말한 과정을 겪었다. 그 폭풍들이 지난 후, 나는 지나간 날들속의 나 자신을 되짚어보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한 과정을 적어보기 위해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종국엔 나의 글이 나의 성장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겐 위로가,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길 바랐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늘 불안하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유래가 없던 질병으로 인해 가게의 문은 닫혔고 모임은 취소되고 학교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일자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이미 일할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내일을 알 수 없게 된 지금. 삶 자체가 너무나 불안해져 버린 오늘.

삶을 영위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 보장되지 않는 지금처럼 불안한 시기에 우리는 지쳐버리고, 과연 내가 행복해 질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감이 피어 오른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과연 행복은 가능한 일일까. 이미 아래로 곤두박칠 쳐버린 이런 삶 속에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낙방해버린 수험생, 수년을 공무원 공부에 매달렸지만 합격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노량진 고시촌 수험생과  잘 다니던 회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권고 사직을 선고받은 가장. 사랑하던 사람과의 미래가 불투명해져버린 어느 연인과 바람피는 애인을 목격한 사람. 한 때는 부부였다가 지금은 남이 되어버린 사람들. 인생의 가장 큰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삶에 더 없는 위기가 닥친 순간에 우리는 생각한다.

행복해지고 싶다.

하지만 내게 당장 이렇게 큰 불행이 닥쳤는데, 그럼에도 나는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다시 혼자가 되어야 했던 그때의 절망감. 더 이상의 바닥이 없을 것 같은 그 순간에 나는 가장 행복을 갈망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 눈을 뜰 기운도, 용기도 없는, 이토록 불행한 내가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 내일이 기대되는 날들을 다시 맞이 할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당연하고도 쉬울 것 같은 꿈이 무엇보다 어려워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이혼이라는 지독하고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당신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책을 읽고 내 글을 다시 읽고 브런치에 올라온 수많은 행복에 관한 일들을 찾아 읽는다.

결국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거의 아픔을 대면하고 완전히 극복해야 행복해 질 수 있기에 나는 비로소 글로 그것들을 마주하며 나아가려 발버둥쳤다. 그런 나의 흔적들이 남아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용기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정리해본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속에서도,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깊은 나락속에서도 시간이라는 지원군에게 기대 조금씩 치유해 나가던 과정을 적는다.  이렇게 내가 해온 것처럼 당신도 일어날 수 있기를. 조금은 용기낼 수 있기를 바라며.  



                                                                                                                        출처 : Uns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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